- 성(誠)만 함이 어디 있겠는가

<여설>‘노요지마력 일구견인심(路遙知馬力 日久見人心)' 즉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사람은 오래 사귀어 보아야 그 마음을 알게 된다’하였다. 이처럼 사람의 진면목을 알기란 정말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평생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부부도 죽을 때까지 서로를 알지 못하고 죽는다 하지 않는가. 공자께서는 사람의 진면목을 알아보는 방법 즉 진정성을 판단할 수 있는 3단계 방법을 제시하였다.

 

▲첫 번째 단계는, 시기소이(視其所以) 즉 겉으로 나타나는 일하는 모습을 보라는 것이다. 즉 일을 하고 있는 태도나 모습을 보면 그 일에 대하여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일에 대하여 진정성을 가진 사람은 진심을 다하여 열정적으로 하겠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은 마지못해서 억지로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자원봉사자가 진정성을 가지고 봉사활동을 한다면 정성과 열의를 다하겠지만 진정성이 없다면 그저 마지못해서 형식적으로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그 사람이 일하는 모습이나 열정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관기소유(觀其所由) 즉 ‘그 일을 하게 된 연유를 살펴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일을 하게 된 연유나 목적까지 살펴보라는 것이다. 사람을 판단하는 첫 번째 단계인 일을 하는 태도를 보고서 그 사람의 참 모습이나 진정성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겠으나 그것만으로는 제대로 다 파악했다고 볼 수 없다. 그 일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또 ‘목적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그 사람에 대한 진정성을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원봉사의 동기나 목적이 순수하다면 진정성 있는 봉사활동이 되겠지만 스펙이나 쌓고 가산점을 얻기 위한 목적이라면 그 봉사 활동은 진정성이 없이 가식적이 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일을 하는 겉 모습만 보지 말고 반드시 그 일을 하게 된 동기나 목적까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이나 정당이 대부분 선거승리나 정권획득이라는 이해 타산적 목적을 위해 정치 활동을 하기 때문에 국가와 국민을 위함이라는 순수성과 진정성을 저버리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그래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찰기소안(察其所安) 즉 ‘그 일을 편안한 마음으로 하고 있는가’를 관찰해 보라는 것이다. 진정성과 순수성을 가지고 일을 하면 열정적이고 편안한 마음으로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일을 마치고 나서도 보람을 느끼게 되지만 이해타산적으로 일을 하면 편안함이나 보람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 가산점을 얻기 위해 봉사활동을 하였다면 순수한 봉사목적보다는 가산점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편안함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마치고 나서도 보람을 느끼지 못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일을 하는 사람이 편안한 마음과 보람을 느끼면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까지를 관찰해보아야 그 사람에 대한 진정성을 제대로 파악했다 할 수 있겠다.

다시 한 번 공자가 제시한 진정성을 알아보는 방법을 정리해 보면, 제일 먼저 그 사람이 일하는 태도나 열정을 보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그 일을 하게 된 동기나 목적을 살펴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일을 하면서 편안함과 보람을 느끼고 있는지를 관찰해보라는 것이다. 이처럼 일하는 태도나 열정, 동기나 목적, 일하는 편안함과 보람이 모두 참되고 성실해야 진정성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나와 남에게 있어서 최고의 덕목은 진정성 즉 진실로 정성을 다하는 것,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성(誠)이라는 말에는 정성, 진실, 삼가함의 뜻이 담겨 있다. 중용에서는 성(誠)에 대해 이렇게 논하고 있다. 응용하여 설명하면, 매사에 항상 곡진(曲盡)함 즉 정성을 다하라.

다시 말해 신독(愼獨) 즉 홀로 있을 때도 삼가여 성(誠)의 마음과 행함이 한시도 흐트러짐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처럼 성(誠)을 다하면 어느덧 성(誠)의 기운이 몸 안에 쌓이게 되고 쌓인 기운은 몸 밖으로 나타나게 되어 몸의 안과 밖이 모두 성(誠)의 기운으로 빛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성(誠)스러운 언행일체가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본받게 한다. 그리하여 그간 성(誠)스럽지 못하게 살아온 자신을 뉘우치고 새롭게 변하게 하는 힘을 갖게 한다. 그래서 지난날의 성(誠)스럽지 못한 삶을 완전히 청산하고 새롭게 성(誠)스러운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천하지성’(唯天下至誠) 위능화(爲能化) 즉 오직 天下의 지극한 성(誠)만이 능히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즉 지성(至誠)만이 나 자신과 남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내 자신과 남 그리고 세상사에 있어서 성(誠)만 함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지성감천(至誠感天)이라 하지 않는가. <인문교양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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