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취꽃과 비슷…줄기에 하얀 솜털 보송보송

차창 밖으로 지나는 하늘, 산, 들, 사람 사는 고샅고샅 등 풍경이 다양하다. 들녘은 벌써 황금벌판, 추수를 기다리는 벼들이 논에 가득하다. 바둑판처럼 잘 짜여진 농경지의 구획이 선명하다. 먼 산의 푸르름은 아직 여전하고 동네 입구의 나무들이 가끔씩 단풍색을 띤다.

언젠가 외국에서 오랜만에 귀국해 여행을 같이 하던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아기자기한 조국의 산천을 돌아보면 눈물이 난다고. 뽀송뽀송한 가을빛에 상쾌한 공기 맛은 지구촌 어느 곳에서도 느껴 볼 수 없는 기분일 것이다.

지난 봄 친구들과 나들이를 준비했었는데 안타까운 세월호 사건으로 자숙하자며 보류했던 여행을 이제 실행에 옮겼다. 모두들 창밖을 주시하고 말이 별로 없다. 가을녘 모습이 자신의 처지와 비슷해서일까? 희끗한 머리는 영락없는 노년이다. 고교동창들끼리 허물없이 어린애 같은 농담을 하지만 나이 먹은 티는 어쩔 수 없다. 노년으로 넘어선 현실을 인정하고 그에 맞게 살아가는 방도를 찾는 것이 순리일 것 같다.

정신없이 살아온 세월이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다 이젠 자리에서 밀려난 친구들이 다시 모인 것이다. 자식들 결혼시키고 이제부터 또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인생 산 넘어 산이라더니, 옛 어르신들 말씀이 꼭 맞는 것 같다. 집 안에 덩그러니 부부가 서성일 때면 갑자기 허무함이 밀려온다. 몸은 늙어 굽어가고 젊은 날보다 더 혹독한 노년이 오는 것은 아닐까. 문득 내 정체성을 다시 되살펴보게 된다.

이름도 생소한 ‘봉퐁’이란 태풍의 영향인지 아래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바람이 거세다. 나뭇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가로수들이 시달리고 있다. 부산의 오륙도 앞바다는 흰 거품이 갯바위를 때리며 높은 파도로 어수선하다. 거센 물보라가 바람에 날려 안경에 이슬이 맺히듯 튀어 붙는다.

오륙도 해파랑길을 움츠리고 걷다보니 언덕에 펼쳐진 야생화가 눈에 들어온다. 바닷가의 식물이 다 그렇듯 납작 엎드려 아직도 노란꽃을 곱게 피운 갯고들빼기, 보랏빛 해국꽃이 뽐내고 있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지만 남녘 바닷가의 특색인 것이다. 그런데 꽃대를 높이 세우고 도도하게 털머위가 노란꽃망울을 달고 서 있다. 꽃모습만 보면 곰취꽃과 아주 비슷하고, 이파리는 일반 머위와 닮았다. 줄기를 보면 하얀 솜털이 보송보송 나 있어 털머위라 불리는 식물이다.

<대전시 평생교육문화센터 강사>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