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역정이 새겨진 지문-유용주의 삶과 문학⑥

대호상회에서의 새로운 경험

대호상회를 통해 용주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에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는 세상의 경험들을 통해 작가의 길로 한 발 더 다가선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하고 어떤 모습으로 사람을 대해야 좀 더 오래 그곳에 머물 수 있고 어떤 처세술을 보여야 미움보다 대우를 받는지 몸으로 배우는 시간이 다가온다.

그곳에서 술을 만났고 담배도 만났다. 어린 용주는 술과 담배를 이보다 훨씬 먼저 알았다. 아버지의 일상이 술이고 담배였다. 용주보다 나이가 열 살은 많은 형이 군대까지 갔다 왔는데 월급이 적당치 못하다고 그만두게 됐다. 그날 송별회를 할 때 형이 술·담배를 권했다.

아버지의 삶에서 술·담배가 어떤 일을 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용주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랬을 것이다. 그 시대의 시골 풍경은 그랬다. 엄마는 하루 종일 일하고 아버지는 하루 종일 노름을 하거나 술을 마셨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엄마가 차려낸 밥상이 나가떨어지고 종내 서슴지 않고 폭력이 자행됐다. 술의 힘을 빌려 말이다.

용주는 대호상회에 취직하고 얼마 있지 않아 요즘 말로 고속승진을 했다. 일이 너무 힘든데 월급은 적게 주니, 나이 많은 형들이 그만두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어찌 보면 고속승진이 아닌 과도한 노동의 현장에 조기 투입된 어린 노동자였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 고속승진이란 것이 타이탄 트럭의 새끼조수 자리였다. 용주는 흥분했다. 자전거를 몰다 차에 올랐으니 흥분이 될 법도 하다. 직접 차를 몬 건 아니지만 운전석 옆에 당당하게 앉아 대전보다 더 먼 곳까지 갔다 올 수 있다는 설렘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어느 겨울날 주인아저씨는 차를 몰고 옥천 금강이 보이는 시골 상점으로 향했다. 그 차에는 용주, 용주보다 나이가 많은 승재가 타고 있었다. 차는 비포장도로를 투덜거리며 달렸고 겨울 해거름을 앞서가려다 사고가 났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고 깨어나 보니 어느 민가였다. 운전한 주인아저씨와 승재 형은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져 병원에 실려 갔지만 용주는 차에서 나와 혼자 걸었다.

작가는 이 부분에 대해 자신도 믿기지 않을 만큼 신기하게도 다치지 않았다고 했다. 질긴 사람이 끝내는 이긴다고 했던가. 용주는 그렇게 작가가 되기 위해 성장하고 있었다. 시골에서 태어났으면 길에서 자라고 있는 질경이를 봤을 것이다. 질경이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리어카에, 수레에 밟히고 찢겨도 죽지 않고 굳건하게 생명력을 지킨다.

유용주 작가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를 위해 임진각에서 강정마을까지 걷는 행사에 대전·충남작가회의가 맡은 지역을 함께한 적이 있다. 세종시에서 전북 여산의 한 고교까지 약 70㎞가 넘는 길을 3박4일 걸었다. 필자는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끝내는 터지고 말았는데 작가는 흔들림이 없었다. 마지막 코스가 약 6㎞ 정도 됐는데 그 일정이 끝나고 파김치가 된 필자는 곧바로 집으로 되돌아오고 말았고, 그때까지도 체력이 넘친 유용주 작가는 전북작가회의 회원들과 회포도 풀고 강정마을에 대해 많은 얘기도 나눴다는 말을 들었다.

타고난 몸도 있지만 그에겐 어린 시절부터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삶의 여정이 있어 오늘도 지치지 않고 코뿔소처럼 씩씩거리며 글을 쓰고 때로는 후배들에게 삶을 구수하게 얘기하는 열정을 갖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 사고 이후 주인아저씨는 새로운 기사를 직원으로 뽑고 차도 6.5톤 차로 바꾸었다. 함께 사고를 당했던 승재 형은 퇴원 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용주는 새끼조수가 아닌 진짜 조수로 나섰다.

유용주 작가는 정식 조수가 돼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고구마 삶은 냄새가 구수한 군산 소주공장이라고 회상했다. 규모도 규모지만 그것에서 만난 수많은 여공들이 용주가 타고 있는 트럭에 몰려들어 어린 용주에게 동생 삼자고 했다는 기억을 더듬었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객지생활을 하다 이런 누이들을 만나면 반갑고 고마웠을 것이다. 누이들의 말에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고 했다. 이런 행복도 사실 오래가지 못한다. 또다시 세상살이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 사건이 용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희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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