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역정이 새겨진 지문-유용주의 삶과 문학⑦ - 대호상회의 아린 추억

대호상회가 있던 자리는 지금 은행동 안의 거리다. 이 거리에 대호상회가 있었는데 지금은 길에 편입돼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사라져버린 대호상회의 발자취를 찾아 으능정이 거리를 걸었다. 평일 오후라 젊은이들이 눈에 많이 띄지 않았지만 젊은이들이 찾는 거리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활력이 느껴졌다. 작가는 걷다가 이쯤 어디에 대호상회가 있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40년 세월이면 강산이 네 번 바뀌고도 남을 시간이 아닌가. 작가의 설명을 들으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이곳에서 삶을 배워야 했던 용주, 그 용주 나이보다 어린 중학생들이나 나이가 많은 연인들이 손을 잡고 어깨를 감싸고 가는 모습을 보며 작가는 그 시절을 저만치 떼어내고 싶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통과의례처럼 그 시절을 거쳐 왔기에 오늘 작가로서 이 자리에 서서 옛날을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잠깐 햇살을 피해 커피숍에 들렸다. 우리는 유용주 작가에게 그 시절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했다. 다시 이곳을 찾은 느낌부터 그 시절에 가장 힘들었던 기억들에 대해서였다. 그 중 마음 한쪽을 짠하게 만든 대답이 하나 있었는데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모습이나 하굣길에 만난 또래 아이들을 볼 때 부끄러웠고 나도 저렇게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없이 했다는 것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생각 죽어도 못할 것이다. 학교 가는 길이 지옥길이라 생각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가난이 진종일 따라다녔고 그 가난을 떨치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림자처럼 어느새 옆에 와있었던 것이 그 시대의 모습이었다. 어린 용주가 어떻게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가난해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학교에 적응을 못해 그만두는 아이들이 해마다 늘고 있고 옛날 용주가 그렇게도 가고 싶어했던 학교는 작금의 학교 모습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다른 하나의 질문은 작가가 돼 고생했던 곳에 다시 오니 어떤 생각이 드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몇 년 전에도 이곳을 들린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는 너무 많이 변해 첫눈에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몰랐는데, 천천히 그 시절을 기억하며 돌아다녀보니 어렴풋하게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용주는 정식 조수가 돼 군산·천안·서울 등을 오갔다. 운전수 말을 열심히 들으며 때로는 적은 용돈을 받으며 하루하루 적응해 갔다. 그 용돈이란 것이 영수증을 부풀려 나온 돈이란 걸 그도 알고 있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속담이 있듯 운전수의 거짓말은 주인아저씨에게 들통이 났다. 함께 영등포 맥주공장에서 돌아오던 어느날 주인은 용주에게 그 동안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물었고 겁에 질린 용주는 있는 그대로 말을 했다.

그날 운전수는 주인과 싸우고 그만뒀고 용주는 칭찬을 받았다. 칭찬을 받은 자신이 그렇게 바보 같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자신도 돈 몇 푼을 받아썼으니 똑같은 놈인데 왜 그때 주인아저씨가 묻는 대로 답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오히려 자기반성을 했다. 소설 ‘마린을 찾아서’의 한 장면을 여기서 인용해 본다. “사실 대호상회로 오기 전에 중앙시장 오복상회에서 잠깐 일을 했을 때도 그놈의 주둥아리 때문에 그만둬야 했다.”

작가에게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날 밀가루 한 포대가 부족해 주인이 난리를 쳐 동갑내기 칠성에게 함께 그냥 물어주고 말자고 했다가 그 이야기를 칠성이가 주인아저씨에게 해서 용주는 도둑으로 몰려 해고돼야 했다는 얘기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어린 용주가 주인아저씨에게 사실대로 말한 것 말이다. 용주가 사실대로 말을 했는데 그것에 대해 자괴감을 갖게 만든 세상이 과연 어떤 세상일지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작금의 세상도 참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다. 어린 용주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일을 볼 때마다 아이들은 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어느 신문 보도에 따르면 남을 속여서라도 잘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절반이 넘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대답했단다. 용주는 대호상회를 더 다닐 수 없어 그날 가방을 싸야했다.

김희정<시인>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