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楊柳詞(양류사) -
送君心逐狂風去(송군심축광풍거)라가,
去掛江頭綠柳枝(거괘강두녹유지)를.
綠柳能知心裏事(녹유능지심리사)어든,
煙絲强欲繫郞衣(연사강욕계랑의)를.

- 양류사(楊柳詞) -
그대 보낸 후 마음이 광풍처럼 그대 뒤쫓다가,
강나루의 푸른 버들가지에 걸리었네.
푸른 버들이여! 내 마음 잘 알 것이니,
푸르스름한 실버들로 님의 옷소매 묶어다오.

◆지은이 금각(琴恪) : 생몰 연대는 알지 못하는데, 18세에 요절했다.
이 시는 연정(戀情)을 읊은 시로, 짝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내기 싫어하는 간절한 정을 버들을 통하여 드러내고 있다.
요즈음의 연정은 물이 개울을 흘러가듯 아무런 맺힘이 없다. 헤어지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니 애틋한 연정은 느껴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허나 옛날에는 이와 달랐다. 남녀가 유별하여 남녀가 7세만 되면 한 자리에 앉지도 않았고, 남녀가 손수 물건을 주고받지도 않았다. 남녀가 서로 접하기가 이처럼 어렵기에, 맘에 드는 연인을 만나기는 하늘에서 별 따기요, 그래서 헤어짐은 천 길 벼랑에서 떨어짐인 것이다. 그래서 이루지 못한 사랑 뒤에는 죽음이 따르기도 했던 것이다.

이 시를 쓴 지은이 또한 못 이룬 사랑 때문에 죽음을 맞게 된 것이다. 그는 허균(許筠)의 아버지인 허봉(許篈)의 제자였는데, 아뿔싸! 스승의 딸을 연모했던 것이다. 그러나 남녀가 유별한지라, 그 사실을 터놓고 말할 수 없어 속만 태우다가, 마침내 그녀는 떠나가게 된 것이다.
지은이는 떠나가는 그녀를 아까워하여 마음이 광풍처럼 달리어 그녀가 가고 있는 강나루 버들 숲 앞에 선 것이다. 그리고 차마 직접 말할 수 없는 입장이라, 버들에게 하소연했는데, 그 상황이 제4구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즉 ‘푸른 버들이여! 실같은 줄기로 가는 님 옷소매를 꿰매어 붙잡아다오’라고. 얼마나 답답했으면 버들에게 저렇게 매달릴까.

그러나 이 또한 부질없는 짓. 그녀는 결국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지은이는 체면 때문에 적극적인 방법도 못 쓰고, 그렇다고 그녀를 깡그리 잊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혼자만 애태우다가 18세의 글방 도령인 지은이는 결국 사랑에 원 맺힌 원귀(寃鬼)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 시에는 지은이의 그리움이 사무치게 드러나 있는데, 특히 제1구와 제4구는 절망의 신음 소리가 되어 귓전을 파고든다. 애달프다.

그 해, 임진년 탄금대의 아픈 역사

- 彈琴臺(탄금대) -
片雲飛雨過琴臺(편운비우과금대)한데,
招得忠魂酹酒回(초득충혼뢰주회)를.
欲問當時成敗事(욕문당시성패사)나,
暮山無語水聲哀(모산무어수성애)를.

- 탄금대(彈琴臺) -
조각 구름, 흩어지는 비 탄금대를 지나는데,
충혼(忠魂)들 불러모아 술을 먹여 보내었네.
당시의 성패사(成敗事)를 묻고자 하나,
저문 산은 말이 없고 물결만 애달프게 우는구나.

◆지은이 이명한(李明漢) : 1595(선조28)~1645(인조23)년 간의 문신.
이 시는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격전지였던 탄금대를 방문한 지은이가 지난 일을 회고하면서 지은 작품이다.
탄금대는 충주(忠州) 북서쪽에 있는데, 그 옛날에는 우륵(于勒)의 가야금이 이곳에 잔잔히 울렸었다. 그러나 1592년 임진년(壬辰年)의 이곳에는 죽음의 비명소리가 천지간에 가득했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지은이가 방문했을 때는, 슬픈 물결 소리가 귓가에 쟁쟁했던 것이다.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파죽지세로 북상을 했다. 이때 조정에서는 신립(申砬)을 도순변사(都巡邊使)로 삼아 적을 막게 했다. 신립은 일본의 소서행장(小西行長)을 맞이하여,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고 결사항전을 했다. 허나 처참한 패배를 당했으며, 이에 신립은 강물에 투신하여 자살했다. 이 패전으로 임금은 마침내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다.

지은이가 탄금대를 찾아왔을 때는 전쟁의 흔적이 사라지고 없었다. 오직 흰 구름과 지나가는 비만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지은이는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그때 절명(絶命)했던 충혼들을 초빙하여 위로의 제사를 올렸다. 사람들은 전쟁에서 죽는 것을 예사로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 이면에는 무한의 서글픔이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등지고서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고 이승을 하직한다는 것은, 결코 기쁘지도 쉽지도 않은 일이다.

더욱이 병졸들의 경우에는 장수와는 달리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다. 슬픈 일인 것이다. 제사를 다 지낸 지은이는 그곳의 산천에다 당시의 상황을 묻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산은 묵묵부답이요, 강물만 슬픈 소리를 내면서 흘러가고 있을 뿐인 것이다.
지은이의 이 시는 결전이 있은 후 몇 백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당시의 탄금대를 다시 생각게 한다. 특히 제4구의 '저문 산은 말이 없고 물결만 애달프게 우는구나'의 구절은 비장감을 용솟음 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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