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大同江(대동강) -
防草萋萋雨後多(방초처처우후다)한데,
夕陽洲畔采菱歌(석양주반채릉가)를.
佳人十幅綃裙綠(가인십폭초군록)하니,
染出南湖春水波(염출남호춘수파)를.
- 대동강(大同江) -
비 온 뒤라, 방초(芳草)가 무성히 불어났는데,
석양의 섬 가에는 채릉가(采菱歌) 소리 들려오네.
고운 그녀의 열 폭 생사(生絲) 치마는 푸른빛 머금었으니,
남호(南湖)의 봄 물결에서 물감을 짜내었으리.

◆지은이 이정구(李廷龜) : 1564(명종19)~1635(인조13)년 간의 문신.
이 시는 ‘월사(月沙)’란 호를 가진 지은이가 대동강에 이르러 시각과 상상이란 도구를 사용하여 읊은 작품이다.
지은이는 신흠(申欽)·장유(張維)·이식(李植)과 함께 조선 중기의 4대 문장가로 꼽혔다. 이 시는 고려 시인 정지상(鄭知常)의 ‘대동강(大同江)’시, 즉 “비 개인 긴 강둑에 풀빛이 짙은데(雨歇長堤草色多)/ 그대 보내는 남포(南浦)에서 슬픈 노래 불러보네(送君南浦動悲歌)/ 대동강물은 어느 때나 마르려나(大同江水何時盡)/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푸른 물결 위에 더해지네(別淚年年添綠波).”의 운자를 빌려 지은 시이다.
지은이는 이 시의 제1, 2구에서 꽃다운 풀이 무성히 우거진 봄 날, 석양빛에 물든 작은 섬에 마름풀을 뜯는 노래가 퍼지고 있는 전경을 읊고 있다. 봄기운이 완연하여 추위의 침범을 걱정 안 해도 되는 시절, 석양녘에 은은히 들려오는 노래 소리는 싱싱한 생동감과 평화로운 서정이 일게 한다. 온 세상이 요순(堯舜)의 태평시절인 것이다.

이러할 때, 물가에 나온 아름다운 여인의 생사(生絲)로 지은 푸른 치마는 지은이의 눈에는 유난히 고와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은이는 여인의 치맛자락 빛깔을 보고 시상(詩想)을 놀리기를, 맑고 푸른 남호(南湖)의 봄 물결 속에서 염료를 추출하여 물들인 것이라 하고 있는 것이다. 반지르르 다림질 된 미인의 치맛자락에 생명의 빛깔인 푸른빛이 베어있는데, 이 빛깔은 다름이 아닌 푸른 물 속에서 얻어온 것이라 함으로써, 치맛자락에 청초함과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봄날의 꽃다운 풀과 채릉가 소리 및 여인의 치마, 그리고 넘실대는 푸른 강물을 배합하여 만든 한 곡조의 봄 노래인 것이다. 

 부인을 잃은후 맞은 슬픈 봄

- 傷春曲(상춘곡) -
妖紅軟綠含朝陽(요홍연록함조양)한데,
鶯吟燕語愁人腸(앵음연어수인장)을.
苔痕漬露翡翠濕(태흔지로비취습)한데,
杏花樣雪臙脂香(행화양설연지향)을.
- 상춘곡(傷春曲) -
붉은 꽃과 연초록 잎사귀가 아침햇살 머금었는데,
꾀꼬리와 제비 소리는 남의 속을 아프게 하는구나.
이슬 젖은 이끼는 비취빛을 발하는데,
살구꽃이 눈인 양 흩어지니 연지(臙脂)처럼 향기롭네.

◆지은이 박엽(朴燁): 1570(선조3)~1623(인조1) 사이에 생존한 문신.
이 시는 부인을 잃은 후 새봄을 만났을 때의 애상을 읊은 작품이다. 그래서 제목이 ‘상춘곡(傷春曲)’, 즉 ‘봄을 슬퍼하는 노래’가 된 것이다.
인생의 가장 큰 아픔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이다. 더욱이 만날 기약을 두고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저승으로 영영 떠나 보내게 될 때의 슬픔이란 말로는 형용이 불가능한 것이다. 죽음이란 가는 자에게나 남은 자에게나 모두에게 뼈아픈 사건인 것이다.

지은이는 사랑하는 부인을 잃었다. 그 슬픔 속에서 봄을 만난 것이다. 살아서 함께 있다면, 오히려 봄을 담담히 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홀로 봄을 보내게 된 이 순간에는 봄날의 모든 전경이 더욱 화려해 보이고, 또 그래서 아내의 죽음이 더 서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 시는 화려함을 다한 작품이다. 제2구의 ‘愁人腸(수인장)’, 즉 ‘남의 속을 아프게 하는구나’란 구절이 없었다면, 봄을 찬미하는 시로 보일 정도이다. ‘붉은 꽃’, ‘연초록 잎사귀’, ‘아침햇살’, ‘꾀꼬리’, ‘제비’, ‘이끼’, ‘이슬’, ‘비취빛’, ‘살구꽃’, ‘연지’ 등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소재로 시가 이루어진 것이다.

지은이의 눈에 봄날의 전경이 이토록 화려해 보이는 것은 바로 봄을 아내와 함께 누릴 수 없었기 때문인 것이다. 즉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말처럼, 이미 봄을 함께 누리지 못할 입장이기에 봄날의 전경이 더욱더 멋져 보였던 것이다. “이슬 젖은 이끼는 비취빛을 발하는데, 살구꽃이 눈인 양 흩어지니 연지(臙脂)처럼 향기롭네."라고 읊은 제3, 4구는 그 화려함이 극치에 도달해 있다 할 것이다.

이 작품은 마치 망자를 보낼 때 쓰는 꽃상여인 듯 여겨진다. 화려하게 장식된 꽃상여는 슬픔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물건이 아니던가. 그래서 이 시는 화려해 보이지만, 실은 큰 슬픔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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