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역정이 새겨진 지문-유용주의 삶과 문학⑧경호제과

용주는 과자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경호제과에 들어갔다. 그러나 기술보다 더 높은 벽이 있었다. 지역감정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역차별이다.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진 지역차별은 반세기가 다 돼 가는데도 당당하게 살고 있다. 이 좁은 땅덩이에서 경상도니, 전라도니, 충청도니 하는 말로 지역을 차별하고 감정을 조장해 누가 무슨 이익을 얻고 있는가. ‘권불십년’이란 말이 무색하게, 지역감정을 팔아 아직도 권력을 휘두르는 집단을 보면 그림자도 없는 지역감정은 생명력이 질기다.

이런 자들에게 표를 주는 것도 문제지만 이런 자들의 말을 믿고 인터넷 세상에 댓글을 다는 이들이 있는 것도 모자라 국가정보원까지 나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데 앞장섰다니 말문이 막힌다. 어린 용주가 아무리 기술을 배우면 뭐하겠는가. 실력은 뒷전이고 어디에 태어났느냐, 어느 학교 출신이냐, 부모님은 뭘 하시느냐로 결정이 난다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겠는가. 이런 일이 정치권력의 중심도 아닌 제과점에서 일어났다고 하니 용주로선 억울했을 것이다. 그가 시인이 돼 그 억울함을 쓴 시 한 편을 인용해 본다.

맞았다/이유 없이 그는/코피가 터졌고/코뼈가 주저앉았고/코가 삐뚤어졌다// (중략)
밤이 무서웠다/날마다 맞지 않으면/잠이 오지 않았다/오늘은 왜 불러내지 않나/공포에 떨다가 잠이 들면/그들은 어김없이 그를 깨웠다/울 수도 없었다/너무나 무섭고 서러워 울려고 하면/크고 거칠은 손이 입을 막았고/입 막은 손을 놓기도 전에/그들은 그를 때렸다/아무 이유도 없었다/그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대전역 앞 경호제과’ 중

이 시를 보면 용주가 경호제과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있다. 백마디 말보다 한마디 욕이 낫다는 말이 있듯 시 한 편으로 경호제과 생활이 한 눈에 짐작이 간다. 유용주는 1959년 5월 10일 태어났다. 부산에서 태어나 살기가 막막해 일곱 살에 외할머니 권유로 장수로 이사를 했다. 고향은 부산이고 짧은 유년시절을 장수에서 보냈으니 경상도에서 태어나 전라도에서 자란 셈이다. 이런 출신성분 때문에 어린 시절엔 경상도 놈이라고 장수에서 차별 대상이 됐고, 경호제과나 군대에선 전라도 놈이라고 차별 대상이 됐다.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박쥐처럼 밤과 낮을 구별하며 이곳에 가면 이곳에 붙고 저곳에 가면 저곳에 붙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맞고 또 맞으며 지역차별의 대상이 됐다.

경호제과는 지금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경호제과는 삼층 건물로 일층이 가게, 이층이 공장, 삼층은 건물주가 사는 가정집, 지하는 공장 일꾼들이 밥을 먹는 식당으로 이뤄졌다. 제빵기술을 배우기 위해 처음 한 일이 철판 닦기였다. 다음으로 앞가마 보기, 발효실과 뒷가마 보기를 거쳐 무늬찍기, 생과자 칠하기, 생과자 가스가마 보기, 빵 반죽하기, 생과자 반죽하기까지 숙련이 되면 탁자에 앉아 빵을 만들고 생과자를 싸는 기술자로 올라선다고 한다. 작가는 이런 단계를 하나하나 습득하며 기술자 코스로 올라갔다. 작가의 말을 들으며 그 당시 경호제과의 발자취를 수소문했다. 지금은 중앙시장 먹자골목이 된 그곳엔 옛날 경호제과처럼 많은 빵들을 만들진 않지만 빵집·과자집이 영업 중이다.

필자는 일주일에 한번 중앙시장에서 장을 본다. 대형마트를 이용하지 않은 지 5년이 넘었다. 처음엔 불편함이 있었지만 차츰 적응도 했고 그동안 단골집도 생겨 이제는 익숙해졌다. 동네슈퍼나 재래시장은 우리가 키워야 할 가게들이다. 그것이 사라지면 결국 ‘대형’, ‘대기업’이란 말만 남을 것이다. 어린 시절 필자는 시골에서 자랐다. 장날이면 학교 끝나자마자 무조건 장으로 달려갔다. 주인 몰래 번데기를 훔쳐 먹다 맞은 적도 있고 건어물을 한 움큼 몰래 집어 도망친 기억도 있다. 팥죽이 먹고 싶어 어른들이 먹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에게 시장은 그런 곳이다. 엄마가 그 시장에서 좌판을 했고 계절에 따라 고구마·감자를 번갈아 가며 팔아 식구들 호구대책으로 삼았다.
중앙시장은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중 하나인데 지금은 시름시름 앓고 있다. 대형마트에 손님을 빼앗기고 파리를 날릴 때가 많다. 필자 엄마가 손님을 기다렸던 것처럼 좌판에 앉아있는 상인들의 모습에 어릴 적 필자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김희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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