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新燕(신연) -
萬事悠悠一笑揮(만사유유일소휘)한데,
草堂春雨掩松扉(초당춘우엄송비)를.
生憎簾外新歸燕(생증염외신귀연)은
似向閒人說是非(사향한인설시비)를.
- 갓 돌아온 제비 -
만사가 여유로와 한 바탕 웃음 짓는데,
초당에 봄 비 내리기에 사립문을 닫았네.
공교롭게도 주렴 밖의 막 돌아온 제비는
나에게 사립문 닫았다고 시비를 걸 듯 지저귀네.

◆지은이 이식(李植) : 1584(선조17)~1647(인조25)년 간의 문신.
이 시는 세상의 모든 시름 다 잊고 자연 속에서 한가히 은거생활을 할 때의 정취를 읊은 작품이다.
지은이는 호를 택당(澤堂)이라 하는데 여러 벼슬을 두루 역임했다.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특히 두보(杜甫)의 시를 심히 좋아했다.
지은이는 한 시절 조정의 벼슬살이를 청산하고 산야(山野)에 깃들어 있었다. 세상 속이야 이런 일 저런 일로 신경 쓸 일이 많지만, 세상 밖으로 나오고 보니, 보이는 것은 푸른 산자락이요 들리는 것은 맑은 물소리라. 마음이 절로 여유로와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이 봄을 맞아 생기가 가득하니, 입에서는 호탕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이윽고 봄비가 슬슬 내리기에 누가 오랴 싶어 밤은 아니지만 사립문을 닫아걸었다. 여기서 지은이는 실수를 한 것이다. 무릇 산야의 은자(隱者)는 벽이 없어야 하거늘, 지은이는 낮에도 사립문을 닫아버려 내 집안의 세계와 바깥의 세계를 갈라놓은 것이다. 진정한 은자는 눈에 보이는 산천이 다 내 집이요, 내가 사는 초가 삼간은 또한 온 산천의 것이라 여겨야 하거늘, 지은이는 그 사실을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이때를 놓칠세라. 강남에서 막 돌아온 제비가 주렴 밖에서 지은이를 향해 ‘지지배배’ 우짖는 것이다. 감정이 열려있는 지은이기에 저 제비가 우짖는 뜻을 금세 알아차린 것이다. 즉 지은이의 귀에는 산야에 살면서 사립문을 닫아거는 것이 옳은 짓인가, 그른 짓인가를 따지는 것으로 들렸던 것이다. 제비가 ‘지지배배’라 우짖는 소리는 ‘시시비비(是是非非)’라 하는 소리와 흡사한 것이다. 그러니 제비가 지저귀는 소리를 시비를 따지는 소리로 여기는 것이다.
이 시는 시정(詩情) 가득한 지은이가 산야에 머물면서 자연과 걸림 없이 노니는 모습을 해학적으로 읊은 작품이다.

또 하루 멀어져 가는 세월의 아쉬움

-守勢(수세)-
寒齋孤燈坐侵晨(한재고등좌침신)한데,
餞罷殘年暗傷神(전파잔년암상신)을.
恰似江南爲客日(흡사강남위객일)에,
夕陽亭畔送佳人(석양정반송가인)을.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며-
차가운 집 외로운 등 아래 밤을 지새려 하는데,
주연이 끝난 후 남은 해 보내자니 속이 상하네.
흡사 강남 땅 나그네였던 시절에,
석양의 정자 가에서 님을 보내는 듯하네.

◆지은이 손필대(孫必大) : 1599(선조32)~인조(?)에 생존한 시인.
이 시는 섣달 그믐날 밤, 홀로 묵은 한 해를 보내면서 느끼는 감정을 드러낸 작품이다.
어려서는 모두 언제 성인이 되어 자유롭게 살아볼까 하는 마음에서 빨리 나이를 먹기를 바란다. 그러나 20, 30대를 바삐 보내다가 어느 듯 40대를 넘어서고 보면 나이를 먹어감이 점차 두렵게 느껴지고, 또 그렇기에 그때부터는 세월이 빨리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시간은 한 번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 이 순간 여기서 나의 삶은 오직 한 번뿐이다. 인생은 비디오 테이프처럼 자유롭게 앞으로 전진, 뒤로 후퇴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기에 인생의 매순간순간은 소중하고도 아쉬운 것이다.

한 해는 365일이다. 중년이후부터는 한 해 한 해가 지날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다. 나이를 먹다 보면 결국 가는 곳이 어디이겠는가. 사람들은 저마다 포부를 가지고 일생을 살아간다. 만약 포부를 이루었으면 더 누리지 못해 아쉽고, 이루지 못했으면 이루지 못해 아쉬운 것이다. 그러니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서글픈 일인 것이다.

지은이는 이 시에서 한 해가 끝나는 순간 너무나 아쉬워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을 말하고 있다. 얼마나 아쉬웠으면, 황혼이 질 무렵 천리 타향에서 정든 님을 보내는 기분이라 했을까. 제3, 4구에서는 ‘나그네’와 ‘석양’, ‘님을 보냄’ 등의 시어를 구사하여,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간절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을 천리 타향에서 정든 님을 보내는 상황과 견줌으로써,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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