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熊淵泛舟示永叔(웅연범주시영숙)-
山下春江深不流(산하춘강심불류)한데,
綠蘋風動浪花浮(녹빈풍동랑화부)를.
草靑沙白汀洲晩(초청사백정주만)하니,
捲釣移舟上渡頭(권조이주상도두)를.
-웅연(熊淵)에서 배를 띄워 영숙(永叔)에게 보이다-
산아래 봄 강은 깊어 흐르지 않는데,
푸른 마름풀은 바람에 흔들리고 물거품은 떠다니네.
파란 풀 흰모래 섬에 황혼이 찾아드니,
낚싯대를 거두고 배를 저어 나루터로 올라가네.

◆지은이 허목(許穆): 1595(선조28)~1682 사이의 문신.
이 시는 지인(知人)과 웅연(熊淵)이란 물에서 배를 띄우고 노닐 때 지은 작품으로, 봄 강상(江上)의 풍광을 정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지은이는 당세 남인(南人)의 영수로서, 송시열(宋時烈)의 정적이기도 하다. 예송(禮訟) 시비로 파란만장한 정치생활을 했고, 학(學)·문(文)·서(書)에서 ‘삼고(三古)’라 칭해질 만큼 학예에 뛰어났었다. 특히 그가 삼척(三陟)에 있을 때, 동해의 조수가 내륙 깊이까지 밀려와 백성들이 큰 피해를 입자, 그 유명한 ‘척주동해비(陟洲東海碑)’를 세워 조수를 물리쳤다고 한다. 이 비문은 지은이가 손수 짓고 썼는데, 후인들에 의해 신령한 힘이 있는 작품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시인에게서 물은 봄물이 가장 물 같은 물로 여겨진다. 봄이면 겨우내 얼어붙었던 물이며 대지가 풀림으로써 넘실거리며 생명력을 내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도연명(陶淵明)도 ‘사시가((四時歌)’에서 “春水滿四澤(춘수만사택)”이라 하여 봄을 대표하는 자연물로 ‘가득한 물’을 들었다. 지은이는 봄물을 말하면서 ‘심불류(深不流)’, 즉 ‘깊어 흐르지 않는다’라 하여, 가득 찬 물을 한 눈에 보이도록 회화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많아서 흐르지 않는 듯한 물 위엔 마름 풀이 산뜻하게 돋아있고, 물거품은 제멋대로 떠다니니, 생기와 평화가 가득 서려있다.

제3구에서는 ‘파란 풀’을 말하는 ‘초청(草靑)’과 ‘흰모래’를 말하는 ‘백사(沙白)’를 등장시켜 깔끔한 심성의 세계를 내보였고, 황혼녘을 말하는 ‘만(晩)’자를 써서 한가하고 여유로운 심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즉 정경(情景)을 일체화시킨 것이다. 제3, 4구 전체에서는 황혼녘을 만난 낚시꾼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데, 그 속의 태평스럽고 자연스런 모습은 감상자로 하여금 고향을 찾는 안도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엔 동정(動靜)이 잘 배합되어 조화로움이 서려 있다 하겠다.

한가하고 평화로운 산사의 풍경

-題僧軸(제승축)-
山擁招提石逕斜(산옹초제석경사)한데,
洞天幽杳閟雲霞(동천유묘비운하)를.
居僧說我春多事(거승설아춘다사)하니,
門巷朝朝掃洛花(문항조조소낙화)를.

-스님의 시집(詩集)에 써주다-
산은 절을 감싸 안고 바위 길은 비탈졌는데,
아득한 골짜기는 구름과 노을에 잠겼어라.
스님은 내게 봄에는 일이 많다면서 하는 말이,
‘아침마다 문 앞길에 낙화 쓸기 바쁘지요’ 하네.

◆지은이 임유후(任有後):1601(선조34)~1673(현종14) 간의 문신(文臣).
이 시는 산사(山寺)의 풍경과 그곳 스님의 생활을 약간의 장난 끼를 보태어 읊은 작품이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란 말처럼 사람이란 사물이 눈에 닿게 되면 반드시 마음이 동하게 된다. 그래서 마음을 닦는 승려들이나 도사들은 울긋불긋 화려한 세상을 피하여, 오솔길 깊은 산중을 찾아들어 마음을 수양한다. 그 속에는 속임도 다툼도 교태도 없기에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다스리기가 쉽다. 물론 공부가 무르익었을 때는 현실세계와 부딪쳐서, 과연 알찬 공부를 했는지 헛 공부를 했는지 확인해보아야 할 것이지만, 처음에는 산 중 생활이 공부에 유익할 수도 있다.

지은이가 찾아간 절도 역시 깊은 산 속에 있어, 비탈진 바위 길을 따라가야만 하는 곳이다. 그곳엔 인적이 없고, 오직 조석(朝夕)으로 구름과 노을만 오갈 뿐인 것이다. 그러니 그 곳의 스님은 물외한인(物外閒人)의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모습은 제3, 4구의 "스님은 내게 봄에는 일이 많다면서 하는 말이,(居僧說我春多事)/ ‘아침마다 문 앞길에 낙화 쓸기 바쁘지요’ 하네.(門巷朝朝掃洛花)"란 표현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봄이 오면 바쁘다 해놓고 그 이유를 겨우 낙화 쓰는 일 때문이라 했다. 한가함의 낙(樂)을 역설적으로 읊고 있다 할 것이다. 시인 이달(李達)의 ‘산사(山寺)’란 시에 “절이 백운(白雲) 속에 들었는데,(寺在白雲中)/ 백운을 스님이 쓸지 않네.(白雲僧不掃)”란 절묘한 구절이 있다. 이달이 머물던 절의 스님은 구름이란 쓸래야 쓸 수 없기에 비질을 안 했지만, 아마 그 스님도 늦봄의 낙화는 쓸고자 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구름을 쓸지 않는 것과 낙화를 쓰는 것은 모두가 한가함을 표현하는 몸짓이기에 그런 것이다.
지은이의 이 시는 산중 스님의 유한(幽閑)한 정취를 낙화 쓰는 일을 통해 자연스레 읊어내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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