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의 맛이 용의 쓸개보다 더 쓰다고 붙여진 이름

눈발이 오다말다 길바닥을 촉촉하게 적셔 놓는다. 북구 어느 나라의 겨울을 연상하듯 우중충하고 을씨년스러운 겨울 오후, 날씨 덕에 심란스럽다. 기분전환 겸하여 시내버스를 타고 마음가는 대로 가보자고 중얼대면서 길을 나서 장수봉을 올랐다. 가끔씩 와 보는 곳으로 산이라고 할 것도 없다. 사람도 별로 다니지 않고 고즈넉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나뭇잎이 바닥을 덮고 나무들은 이미 동면(冬眠)에 든 듯하다. 잦아든 풀들이 흰갈색으로 퇴색하여 황량한 모습을 더한다. 산소 옆의 영산홍이 푸른색을 유지하고 그나마 풀색을 보이고 서 있다. 그런데 생뚱맞게 영산홍 분홍꽃이 가지 끝에 매달려 나 보란듯 피어 있다. 올해에는 별스럽게 각종 꽃들이 계절을 헤아리지 못하고 12월을 넘어서도 피어 있는 모습을 자주 본다. 진달래, 철쭉, 개나리, 벚꽃, 박태기나무 등. 지구환경의 변화로 따뜻한 날씨 덕에 식물들도 헷갈리는 것 같다.

앙상한 산책 풍경을 즐기며 습관적으로 풀숲을 더듬는다. 망개나무 열매가 빨간색으로 가지에 매달려 철봉놀이 하듯 대롱거린다. 초피나무 가지를 입에 잘근거리니 화한 기운이 입속으로 번진다. 나무 밑에 사그라진 강아지풀 사이로 보라색꽃이 보여 깜짝 놀랐다. 용담꽃이다. 이파리는 붉은 갈색으로 이미 초겨을을 맞았는데 단아한 청색을 띤 보라꽃은 성성하다.

용담은 늦은 가을까지도 서리가 내리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도 꽃을 피우는 풀이다. 겨울 문턱의 삭막한 계절에 신비감을 주는 보랏빛 용담꽃을 뜻밖에 만나니 신비스럽기도 하다. 긴 줄기에 마디마다 꽃을 매달고 비스듬히 누워 있다. 그렇게 생명력이 강해도 추위는 어쩔 수 없나 싶다. 마른 풀잎 아래로 길게 누워 칼바람을 피하고 있다.

용담(龍膽)은 용담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전국의 산과 들에서 자란다. 키는 20~60㎝로 줄기에 가는 줄이 있으며 굵은 뿌리를 가진다. 잎은 표면이 녹색이고 뒷면은 회백색을 띤 연녹색이며 마주나고 잎자루가 없이 뾰족하다. 2개의 잎 기부가 만나 서로 줄기를 감싸고 있으며 잎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종(鐘)처럼 생긴 꽃은 8~10월 무렵 줄기 끝이나 잎겨드랑이에 몇 송이씩 모여 자주색으로 핀다. 통꽃이지만 꽃부리는 5갈래로 조금 갈라지고 갈라진 사이에 조그만 돌기가 있다. 꽃이 많이 달리면 옆으로 쳐지는 경향이 있어 바람에도 약해 쓰러짐이 많다.

용담(龍膽)은 약재로 쓰이는 뿌리의 쓴맛이‘용(龍)의 쓸개(膽)보다 더 쓰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용담초(龍膽草), 초용담(草龍膽)이라 하며, 과남풀이란 이름도 있다. 재배하기는 힘들지만 가을철을 아름답게 꾸미기 때문에 관상식물로 정원에 심기에 적당하며, 반그늘지고 조금 축축하면서도 배수가 잘되는 곳에서 잘 자란다. <대전시 평생교육문화센터 강사>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