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역정이 새겨진 지문-유용주의 삶과 문학⑩ 고향 장수의 작가 집필실

서울에 가면 공부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작은 형 친구의 편지를 받고 용주는 많이 설레였다. 이제 정말 돈도 벌고 야간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는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매일 월급날만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월급을 제 날짜에 주어야 마땅하지만, 일꾼들이 도망갈까 봐 보름 정도 월급을 늦추어 주는 공장들이 많았다. 도망을 가더라도 15일 분의 월급을 받지 못한 채 떠나야 했다. 용주는 월급 보름치 받지 못하는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빨리 월급봉투를 들고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월급날만을 매일 기다렸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자정이 넘자 친구 영만을 깨워 인사를 나눈 후 미리 싸둔 가방을 메고 공장을 빠져나와 대전역으로 달려갔다.

작가의 자전 소설 ‘마린을 찾아서’에서 그때의 어린 용주가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엿볼 수 있다. “누가 금방 따라와서 목덜미를 잡아챌 것 같았다. 대전역에서 야간 열차표를 끊고도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대합실도 못 들어가고 밖에 나와 캄캄한 나무 밑에서 기다렸다. 시간은 지렁이만큼이나 발걸음이 느렸다. 기차에 올라서도 환한 불빛 때문에 숨을 곳부터 먼저 찾았다.”

대전역을 출발한 기차는 용주를 태우고 밤을 가르며 서울로 내달렸다. 2년 5개월의 발자취를 대전에 남기고 말이다. 그 발자취가 지금은 작가의 글에 나오는 공간이다. 그 공간이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거쳐 왔는지 작가의 말을 듣기 위해 이은정 시인, 정재은 동화작가, 필자 이렇게 세 명은 고향 장수의 집필실을 향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길을 걸었다.

방문 2주일 전 유용주 작가에게 전화를 했다. 금요일 점심시간에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가는 도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좀처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가끔 술을 함께 마시고 집필실 한 번 오라는 지나가는 말은 들었지만 이번은 일 때문에 가는 거라 설렘과 일에 대한 책임감이 동시에 마음을 바로 세웠다. 오후 1시 30분 정도에 집필실에 도착을 했다.

해발 500미터에 집필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9월 초에 갔는데 아침에는 기온이 6도까지 떨어진다고 했다. 풍경과 전망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외로워서 글을 쓸지 그것이 궁금해졌다. 우리가 간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작가는 점심을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었다. 비빔밥에 국을 먹으며 배를 채웠다. 전직 요리사 출신이라 밥은 맛났다. 시장이 반찬일 수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손님이 오면 우리네 엄마들이 집에서 먹는 음식 그대로 대접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떠오르며, 뭔가 특별한 대우를 받는 기분이 들어 참 좋았다. 유용주 작가가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했다. 대전에서의 작가의 발자취를 찾기 전에 장수 집필실을 먼저 방문한 이유는, 대전 원도심에서 보낸 2년 5개월 동안의 장소와 시간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하고 답을 듣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미리 준비한 질문지를 충실히 따랐지만 이내 거추장스러워져서 던져버리고, 자연스럽게 이은정 시인과 정재은 동화작가, 필자 순으로 궁금한 점에 대한 의문을 풀며 작품과 관련된 질문도 했다. 가지고 갔던 책에 사인도 받고 책에 관련된 일화도 덤으로 들을 수 있었다.

비 오는 날 술을 피해갈 수 없어 화순 정윤천 시인의 공장에서 가져온 포도주와 뽕주를 놓고 유용주 작가의 과거로 시간여행을 함께 떠났다.
처음 아버지가 조성의 중국집에 데리고 간 이야기부터 대전에서 보낸 2년의 시간 등이 작가의 기억을 통해 술술 풀려나왔다. 그 과정을 들으니 애잔하고 짠한 심정에 약간의 눈물이 나왔다. 아마 밖에서 계속 이슬비가 내려서 더 그랬을 거라는 자위를 해본다. 인터뷰 시간은 몇 시간 되지 않았지만 작품과 작품의 시간과 공간이 되었던 것들을 되새김질 하듯 하나하나 찾다보니 시인이, 작가가 그냥 태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새삼 다시 하게 되었다.

김희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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