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박사, 고전번역가

-心(심)-
衆慾交功一箇心(중욕교공일개심)하니,
誰人不喪本來心(수인불상본래심)고.
斧斤山木有萌蘖(부근산목유맹얼)하니,
試向平朝看此心(시향평조간차심)을.
-마음-
많은 욕심이 번갈아 한 개의 마음을 공격하니,
누구인들 본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으랴.
산의 나무는 도끼질하고 나면 싹 새로 돋나니,
시험삼아 새벽에 양심이 다시 살아남을 살펴보네.

◆지은이 김창협(金昌協): 1651(효종21)~1708(숙종34) 년 간의 학자.
이 시는 『맹자(孟子)』의 ‘우산장(牛山章)’을 토대로 심성의 수양을 통한 인격의 완성에 대한 열의를 엿보게 하는 작품이다.
지은이는 호를 ‘농암(農巖)’이라 하는데, 그는 성리학적 세계관과 풍부한 문예의식을 가졌던 학자이다. 권문(權門)의 출신임에도 9년 간만 벼슬을 하고, 산야(山野)에 은둔하여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교유하는 한편, 후학들을 지도하면서 일생을 보냈다.
『맹자』 ‘우산장’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우산(牛山)’이란 산에 나무가 많았는데, 큰 나라의 근교에 있어 사람들이 도끼로 나무를 다 베어 가버렸다. 그러나 비록 줄기는 베어갔지만, 아침에 자고 나면 밑둥치에서 새싹이 다시 돋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와 양이 그것을 먹어치워 버리니, 마침내 산이 벌거숭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에 있어서도 그렇다. 즉 사람에게는 본래 착한 양심이 있었는데, 낮에 활동을 하다보면 욕심의 공격을 당하여 양심을 저버리게 된다. 그러나 세상과 마주치기 전인 새벽에는 양심이 되살아나게 되는데, 또다시 낮에 세상과 부닥치게 되면 양심이 다시 손상당하게 되어, 사람이 점점 짐승에 가깝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본래 양심은 있는 것이니, 이를 잘 키워갈 때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 또한 맹자의 이 뜻을 수용하여 실재로 세상과 마주치기 전인 아침에는 마음 상태가 어떠한가를 점검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제4구를 본다면, 성리학적 이론체계에 부응하는 도학자의 길을 가고자 하는 지은이의 진지한 자세를 뚜렷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도본문말(道本文末)’, 즉 ‘도를 근본으로 삼고 문학을 말단으로 본다’는 문예의식을 가졌던 것이다. 즉 도(道)와 문(文)을 다 중시하지만, 그러나 도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은이가 가진 문학관의 특징인데, 그 특징은 이 시에서도 엿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열녀 형용 못할 깊은 슬픔

-貞女祠(정녀사)-
貞女千秋有古祠(정녀천추유고사)하니,
至今遺像帶深悲(지금유상대심비)를.
應知化作頑然石(응지화작완연석)하야,
不識人間遠別離(불식인간원별리)를.
-열녀(烈女)의 사당-

천추(千秋)의 열녀(烈女)를 모신 옛 사당 있으니,
지금까지 남아있는 석상엔 깊은 슬픔 서렸어라.
이제는 무감각한 돌멩이로 변해버려
인간 세계의 이별의 슬픔도 알지 못하겠지.

◆지은이 조태채(趙泰采):1660(현종1)~1722(경종2) 년 간의 대신(大臣).
이 시는 사연을 알 수 없는 어느 열녀(烈女)의 사당을 지나다가, 슬픔을 남기고 삶을 마감한 그녀를 가련히 여겨 지은 작품이다.
인간 세상에서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해 사는 것은 미덕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을 실천한 부인을 ‘열녀’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미덕도 실천에 있어 융통성(融通性)을 잃게 되면, 도리어 삶을 고되게 하는 형틀이 될 수도 있다. 적절한 조화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퇴계(退溪) 선생도 젊어서 과부가 된 며느리를 친히 재가(再嫁)시키기도 한 것이다.

유교권 국가의 중세 사회는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忠臣不事二君), 열녀는 두 남편을 맞지 않는다(烈女不更二夫).”는 왕권(王權)과 부권(夫權) 중심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물론 이 말은 유교 경전인 사서삼경(四書三經)엔 없고, 전국시대 때 제(齊)나라의 ‘왕촉(王蠋)’이란 이가 죽으면서 한 말이다. 이후 통치계급들은 정통유교의 교리와는 무관한 저 말을 앞세워, 충신·열녀를 숭배토록 유도했다. 조선사회에 와서는 이 현상이 더욱 두드려졌다. 물론 이것이 자발적이었다면 당사자는 기꺼워했을 것이고, 그럴 땐 참된 미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분위기 속에 타율적으로 충신·열녀가 되어야했다면, ‘충신’과 ‘열녀’란 그 칭호는 참혹한 희생의 열매인 것이다.

지은이는 제1, 2구에서 어느 열녀의 사당 속의 석상에 깊은 슬픔이 배어있음을 본 것이다. 그 슬픔엔 남편 잃은 슬픔과 비정상적으로 삶을 살게 된 자신에 대한 슬픔이 겹쳐 있는 것이다. 아! 그 슬픔의 깊이는 도대체 얼마일까. 슬픔이 너무 깊은 나머지 그녀는 굳은 돌이 되어, 이제는 자신은 물론 남들의 이별의 슬픔도 알지 못하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지은이는 제 3, 4구에서 읊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실경(實景)과 상상을 동원하여 열녀의 슬픔을, 처참한 느낌이 들 정도로 생동감 있게 드러낸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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