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자, 사리사욕 버리고 국민행복을, 인자무적(仁者無敵)의 민생정치 펴야

◈仁은 인간 삶의 최고의 가치요. 만사지본(萬事之本)이다.

‘어짊’이라는 뜻의 ‘仁’자를 파자(破字)하여 그 뜻을 풀어보면 ‘仁’은 ‘두(二)사람(亻)과의 관계론’이라 하겠다. 즉 ‘두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지극한 도리는 어짊이다.’라고 풀이할 수 있다. 仁의 도리인 ‘어짊’의 도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있어서 仁의 도리 즉 어짊의 도리는 부자자효(父慈子孝)의 도리, 즉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도리이다. 부부관계에 있어서는 부화부순(夫和婦順)의 도리, 즉 남편은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고 아내는 그 뜻을 받들어 따르는 도리이다. 형제의 관계에 있어서는 형우제공(兄友弟恭)의 도리, 즉 형은 아우를 우애하고 아우는 형에게 공손히 하는 도리이다. 친구의 관계에 있어서는 붕우보인(朋友補仁)의 도리, 즉 친구 간에는 어진 마음으로 서로를 도와주는 도리다.

또한 직장이나 조직에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에 있어서는 군의신충(君義臣忠)의 도리, 즉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의(義)로서 대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충심(衷心)으로 대해야 하는 도리이다. 仁은 애민이물(愛民利物)의 도리이다. 즉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 풀 한포기, 기물하나도 소중히 하고 사랑하며 함부로 훼손하지 않고 이롭게 육성하는 도리가 바로 仁의 도리 즉 어짊의 도리인 것이다.

이러한 仁의 도리를 실현하는 그 첫 단계가 가정에서의 효제(孝悌) 즉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는 것이다. 가정에서의 효제(孝悌)의 실현은 곧 仁의 사회와 국가를 이루는 그 밑바탕이라 하겠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죄악의 근원은 거슬러 보면 바로 우리 가정과 학교에서의 仁의 교육, 효제(孝悌)교육의 부재로 인함이라 해도 지나침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 仁은 인간 삶의 최고의 가치요. 사람을 비롯한 만물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 근본도리가 아니겠는가.

◈민생정치가 인자무적(仁者無敵)의 정치이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이다. 즉 어진이 에게는 대적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지닌 여러 덕목 중 仁의 덕목이 최고의 덕목인 것이다.

이 말은 맹자이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말로써 맹자가 양나라 혜왕에게 인의 정치를 설파하면서 인용한 말이다. 양나라 혜왕이 어느 날 맹자에게 고민을 털어 놓았다. ‘선왕(先王)께서 영토도 넓히고 하여 큰 나라로 만들어 놓았는데 진나라, 초나라에 영토를 빼앗겨 이제 작은 나라가 되었으니 어떻게 해야 다시 큰 나라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이에 맹자가 답하였다. ‘땅을 빼앗기어 영토가 작아진 것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임금께서 어진 정치를 백성에게 베푸셔서 형벌을 줄이고, 세금을 적게 하고, 전쟁과 부역으로 무리하게 백성을 동원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임금을 따를 것이고 농사일을 열심히 하며, 젊은이들은 틈틈이 효제충신(孝悌忠信)의 덕을 배워 집에서는 부모와 형을 섬기고 밖에 나와서는 어른을 공경하는 어진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백리의 땅을 가지고도 천리 밖의 사람들을 모이게 할 수 있으니 자연히 백성이 많은 큰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진이나 초나라의 임금은 백성을 부역이나 전쟁에 동원하며. 세금을 가혹하게 거둬들이고, 형벌을 늘리어 백성의 생활은 궁핍해지고 민심은 흉흉해져 원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자기나라 임금이 망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몽둥이를 가지고도 창칼로 무장한 그 나라를 굴복시킬 수 있으니 자연히 땅이 넓은 나라로 만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옛말에 ‘어진이에게는 대적할 자가 없다.(仁者無敵)라 하였습니다.’라 하였다.

▲인정(仁政)의 반대되는 정치는 포악한 정치, 학정(虐政)이다. 인정(仁政)은 위정자가 개인의 정치적 야심이나 사리사욕이 없이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위할 때 베풀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위정자가 개인의 정치적 야망이나 사리사욕을 채우려 할 때 자연히 가렴주구(苛斂誅求)하는 학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정치에 있어서 인정(仁政)은 위정자가 사욕(私慾)을 버리고 오로지 국민의 행복과 나라발전을 위할 때 이루어진다 하겠다. 그리고 ‘민생정치’야 말로 모든 정치의 우선인 인자무적(仁者無敵)의 정치인 것이다.

▲그렇다, 위정자는 자신의 정치적 야망, 공적 그리고 사리사욕을 나라와 국민 앞에 모두 희생시켜야 한다. 그리하면 자연히 인자무적의 위정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 (대전시민대학 인문학 교수) -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