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路上有見(노상유견) -
凌波羅襪去翩翩(능파라명거편편)이러니,
一入重門便杳然(일입중문편묘연)을.
惟有多情殘雪在(유유다정잔설재)하야
屐痕留印短墻邊(극흔유인단장변)을.

- 노상(路上)에서 본 것을 읊다 -

아름다운 비단 버선으로 사뿐사뿐 지나더니
한 번 문으로 들어가서는 행방이 묘연해졌네.
오직 다정스럽게도 잔설(殘雪)이 남아 있어
나막신 자국이 낮은 담장 가에 찍혀있네.

◆지은이 강세황 : 1712(숙종38)~1791(정조15) 년 간의 문신, 서화가.
이 시는 아리따운 여인이 남긴 이미지가 너무나 강렬하기에, 차마 잊지 못하는 심정을 낭만적이면서 예술적으로 읊은 작품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이성에 호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이다. 특히 꽃 같은 미모에 아침 이슬 같은 청초함을 머금은 여인이라면 남성은 물론, 여성들조차도 호감을 갖는다. 더구나 낯선 객지에서 선계의 선녀인 듯 고운 자태의 여인을 보면, 대부분의 남성들은 넋을 잃게 된다. 특히 낭만적이면서 심미적(審美的)인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의 경우는 더 심한 것이다.

지은이는 당대의 대 화가이면서 육유(陸游)의 시풍을 배운 명 시인이기도 하다. 그러니 지은이는 몸단속을 금과옥조같이 여기는 선비의 몸이긴 하지만, 그의 예술적 혼은 사회적 통념의 억압을 훌쩍 뛰어넘는 힘을 가진 것이다. 이 시를 보면 그 점을 더욱 강하게 느낄 것이다.

이 시의 제1, 2구에서 여인과의 짧고도 우연한 만남을 읊고 있다. 지은이는 지나가는 길에 여인의 고운 얼굴보다는 새하얀 버선발만 보았던 것이다. 얼굴이 아닌, 버선발을 보는 것은 수줍은 설렘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표현이다. 잠시 버선발을 보는가 했는데, 그 여인은 외간 남자가 볼세라 순식간에 중문(重門) 안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남녀는 오래 본다고 감정의 섬광이 튀는 것은 아니다. 여인은 눈 깜짝할 사이 지은이의 정신을 빼앗고, 다시 쏜살 같이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지은이는 제3, 4구에 이르러서 황홀감에 도취되어 그 여인을 다시 한 번 보고파 하는 간절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여인의 발자국 속에서도 그 여인의 체취를 찾고자 하고, 또 발자국을 만들어준 잔설에게도 정다움과 고마움의 정을 품는 것이다.
이 시는 '잔설'과 '나막신 자국'을 통해 여인에 대한 호감을 은근히 드러낸 작품으로, 경박하지 않으면서도 할 말은 다했다 할 것이다. 

어느 가난한 집의 엄마와 아기 

- 貧家女(빈가녀) -
拾穗山田薄暮歸(습수산전박모귀)하니,
穉兒匍匐啼柴扉(치아포복제시비)를.
吹火濕薪烟不起(취화습신연불기)하니,
夕餐還到鷄鳴時(석찬환도계명시)를.

- 가난한 집의 연인 -
산비탈 밭에 이삭을 줍다가 저물어 돌아오니,
어린 아기는 기어 나와 사립문에서 울고 있네.
젖은 땔감에 불을 지펴도 연기조차 일지 않으니,
저녁밥 먹고 나자 첫닭 울 때가 이르렀구나.

◆지은이 유광택(劉光澤) : 자(字)가 운경(雲卿)인데 생몰 연대는 미상.
이 시는 현실적 가난이 주는 삶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그래서 감상자로 하여금 처절한 생각이 일게 한다.
가난은 무서운 것이다. 창자를 주리게 하고 추위에 몸을 얼게 하고, 인간관계를 원활치 못하게 하고, 또 그에 따라 삶의 의지도 위축되게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의 것을 빼앗지 않고, 또 좌절하지 않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맹자는 ‘無恒産(무항산)이면 無恒心(무항심)이라’, 즉 ‘안정된 생업이 없으면 안정된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

물론 큰 부귀(富貴)는 팔자에 달려있다. 그러나 아무리 박복해도 남의 탓을 말고 낙천적인 자세로 부지런히 살아간다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실은 가난에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 시의 주인공인 산골 여인은 근면성이 있는 사람이다. 비록 남편복도 없고 재물복도 없는 팔자를 타고났지만, 늦게까지 들에 나가 일함으로서 생활의 파탄은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비참한 삶은 아무리 목석 같은 사람이라 해도 동정심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특히 제2구에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기가 엄마를 찾아 사립문까지 기어 나와 울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서글픈 광경이다. 어린것이 배고픔과 공포감에 말할 수 없는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고, 들에서 돌아와 아기를 안아주는 그 어미의 마음은 한없이 쓰라렸을 것이다.
늦게 돌아왔지만 손수 밥을 지어야 하는데, 불을 지피려 해도 젖은 나무밖에 없었기에 불이 쉽게 일지 않았다. 후후 불면서 가까스로 밥을 다하고 보니, 이미 첫닭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열심히 살겠다고는 하지만, 이 지경에 이르면 그 누군들 슬픔의 눈물을 쏟지 않겠나.
이 시는 가난한 자의 고통을 매 구절마다 호소력 있게 전하고 있기에, 삶을 알게 하는 데는 더할 수 없이 가치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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