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박사·고전번역가

- 幽居卽事(유거즉사) -
睡罷茅齋日欲斜(수파모재일욕사)한데,
溪邊汲水煎新茶(계변급수전신다)를.
小庭寂寂無餘事(소정적적무여사)하니,
閒看兒童拾落花(한간아동습락화)를.

- 은거처에서 읊다 -
졸음 깬 띠풀 집에 해는 기울려 하는데
시냇가에 물을 길어 새로 딴 차 끓이네.
작은 정원엔 적적하여 할 일이 없으니,
한가히 아이들이 낙화(洛花) 줍는 것을 바라보네.

◆지은이 최이태(崔爾泰): 숙종(肅宗)과 경종(景宗) 년 간의 문인(文人).
이 시는 태평시절을 만난 한가한 은자(隱者)의 생활을 자연 속의 평범한 소재와 익숙한 시어를 통해 원만히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사람들은 밤에는 근심으로 전전반측(輾轉反側)하다가 밤잠을 설치고, 낮에는 일에 쫓기어 낮잠을 못 잔다. 오직 근심 없이 한가한 이만 잠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삶의 안부는 잠 잘 자는가를 보면 알 것이다.
잠은 자연스런 생리 현상인데 자신의 삶을 잘 열어가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남이 잘 자는 걸 두고 “팔자 좋네.”하고 빈정거릴 것 없다. 그 저주의 벌로 그는 잠 잘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지은이가 낮잠을 깨고 보니, 어느 듯 해는 서산에 기울고 있었다. 그러나 쫓기는 일이 없으니, 해가 진다고 해서 아쉬워 할 것도 없는 것이다. 여유 있는 동작으로 시냇가에 가서 맑은 물을 길어왔다. 그리고 새로 따온 차를 끓여 뱃속을 깨끗이 씻어내고 머리를 시원히 하려 했다. 낮잠도 잘 수 있고 차도 달여 마실 수 있다면, 이것은 신선의 생활인 것이다. 은자들의 공유물이 ‘낮잠’과 ‘차’ 이 두 가지인 것이다.

지은이는 차를 달이면서 정원을 둘러보았다. 거기 역시 아무 일 없고, 오직 아이들이 낙화(洛花)만 줍고 있었다. 자신만 한가할 뿐 아니라, 주위도 또한 한가한 것이다. 완벽한 유거(幽居)의 생활인 것이다.
삶에 무슨 목적을 둘 것인가. 주어진 삶을 즐길 뿐인 것이다. 도연명(陶淵明)도 소동파(蘇東坡)도 그랬다. 그런 그들을 누가 꾸중하던가. 지은이는 최상의 삶을 살고 있고, 그것을 이 시에서는 잘 드러내고 있다.

 

백발과 주름 늘어가지만 마음은 청춘이라오

- 元朝對鏡(원조대경) -
忽然添得數莖鬚(홀연첨득수경수)한데,
全不加長六尺軀(전불가장육척구)를.
鏡裏顔容隨歲異(경리안용수세이)한데,
穉心猶自去年吾(치심유자거년오)를.

- 정월 초하루 아침에 거울을 대하다 -
흰 수염은 몇 가닥 홀연히 더해졌는데,
육척(六尺)의 키는 더 이상 자라지 않네.
거울 속 안색은 세월 따라 달라지는데,
마음만은 어리어 옛날의 나 같구나.

◆지은이 박지원(朴趾源) : 1737(영조13)~1805(순조5) 년 간의 학자.
지은이는 조선 말기의 대 실학자이면서 문장가인데, 이 시는 늙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실학자답게 사실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라 하겠다.

사람은 누구도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수레바퀴에 벗어날 수가 없다. 천하의 진시황(秦始皇)과 한무제(漢武帝)도 영원한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삶을 구했지만, 결국 범부들처럼 허망하게 늙어가 죽음을 맞았다. 그 어떤 장사(壯士)가 늙음을 되돌려 다시 청년이 되게 할 수 있겠는가. 물론 미래에는 생로병사의 비밀을 밝혀내어 늙음과 죽음을 저지하는 약물을 개발해낼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아직까지는 생로병사의 수레바퀴는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꽉 짜여진 그물과도 같은 것이다.

정월 초하루가 되면 나이가 한 살 더 먹게 된다. 이때는 모두가 자기의 삶과 모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지은이는 이미 노경에 접어든지라, 정월 초하루를 맞아 삶의 계획보다는 늙어 가는 자신의 외모에 더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어제 청춘인가 했더니 거울 앞의 자신은 어느새 백발(白髮)의 노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주름살은 늘어나지만, 그러나 불행인가 다행인가. 마음에는 아이 적 기분이 남아있는 것이다. 비단 지은이뿐 아니라, 모든 노인은 몸은 비록 늙었지만, 희로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慾)의 감정은 여전히 작동하는 것이다. 나이 들면 어른 노릇 한다고 감정을 숨길뿐이지, 참으로 감정이 소멸된 게 아니다. 그래서 몸은 비록 늙었으나, 마음만은 늘 어릴 수 있는 것이다. 노인들끼리 모여 놀 때는, 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모습으로 아직 생명을 가졌다는 증거인 것이다.

이 시는 상상력이나 심미적 감성을 동원하여 지은 작품이 아니라, 늙어 가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서, 감상자로 하여금 공감을 쉽게 끌어내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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