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젊은 세대들이 매년 2월 14일은 남녀가 사랑을 고백하면서 초콜릿을 주고받는 ‘밸런타인데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선조, 서른한 살 청년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 받은 날.’이라고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문 것 같다. 우리 모두 옷깃을 여미고 안중근 의사를 추모해 보기로 한다.

▲안중근 의사의 31년, 독립투사의 삶

•안 의사는 8세 때부터 조부에게 한학과 조선역사를 배우면서 민족의식을 키웠고, 아버지의 영향으로 가톨릭 신자가 되어 신학문을 익히고 근대적 사고를 지니게 되었다. 또한 숙부로부터 사격을 배워 명사수로 이름을 날리기도 하였다. 이처럼 안 의사는 근대적 사고와 민족의식과 기상을 지닌 민족 청년으로 성장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구국의 역사 현장에 뛰어 들게 되었다.

•석탄 상을 경영하고 있던 안 의사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1905) 상점을 팔아 ‘삼흥 학교’와 ‘돈의 학교’를 설립하여 스스로 우리역사와 국문을 가르치며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청소년 교육에 진력하였다.(1906)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서 ‘대한의군 참모중장’ 겸 ‘특파 독립대장’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1907∼1908년) •1909년 11명의 동지와 함께 죽음으로서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손가락을 끊어 맹세하고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결성하였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안 의사는 러시아 의장대를 사열하고 군중 앞으로 다가서는 ‘이토오’를 향해 권총 3발을 발사하여 사살하였다. 안 의사는 러시아 군에 의해 체포될 때 러시아 말로 ‘코레아우라(대한만세)’를 연호하였다고 한다.

•여순에 있는 일본법원에서 1910년 2월 7일에서 14일까지 6회에 걸쳐 재판을 받고 2월 14일 일본의 각본대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그해 3월 26일 여순감옥에서 어머니가 지어 보낸 수의를 입고 순국하셨다. •‘사형이 되거든 당당하게 죽음을 택해서 속히 하느님 앞으로 가라.’는 모친의 말에 안 의사는 이후 공소도 포기한 채 여순감옥에서 자서전인 ‘안응칠역사’와 거사의 이유를 밝힌 ‘동양 평화론’의 집필을 끝내지 못한 채 사형집행을 당하여 순국하신 것이다.

▲안 의사의 생애 마지막 5분은 ‘독서’ 1910년 3월 26일 여순 감옥에서 처형당하기 직전에 사형 집행인이 안 의사에게 마지막 소원을 묻자 안 의사는 망설임도 없이 “5분간만 시간을 주시오. 책을 다 못 읽었소.”라 하고 5분간 책을 읽은 뒤 집행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한다. 사형 집행을 앞두고서도 옥중에서 집필과 독서, 서예에 전력하였고 죽는 순간까지 책을 놓지 않았던 안 의사야 말로 나라를 구하는데 평생을 바친 독립투사이기 전에 진정한 학인(學人)이 아니겠는가.

▲일본 재판관도 감동한 당당한 재판 태도와 법정 논술 “이번 거사는 나 일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동양평화를 위한 것이다. … 이토오가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교란자이므로 대한의용군 사령의 자격으로 사살한 것이지 나 개인의 자격으로 사살한 것이 아니다. …” (안중근 의사의 법정논술 내용 중에서)

▲순국 직전 동포들에게 告한 마지막 우국충정의 호소 “내가 대한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 해외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2천만 형제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실업을 증진하며,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여한이 없겠노라. ” (안 의사가 순국직전 동포들에게 告한 유언)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나라가 독립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안 의사가 사형되기 며칠 전 정근, 공근 두 아우에게 남긴 유언 중에서)

▲안 의사의 어머니 ‘조 마리아’여사, 대한의 어머니이셨다. “나라를 위해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大義)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네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주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거라.”(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후 어머니가 보낸 편지 내용 중에서) ▲그렇다. 2월 14일은 우리 국민 모두가 옷깃을 여미고 안중근 의사의 고귀하신 우국충정의 삶과 뜻을 기려야 하지 않겠는가!

- (대전시민대학 인문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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