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모습은 바로 자식이다

인생을 좌우하는 세 사람이 있다. 부모, 스승, 벗이다. 송나라의 성리학자인 ‘여형공’은 ‘집안에 어진 부모형제가 없고 집밖에 엄한 스승과 벗이 없으면서 성공한 자가 드무니라.’하였다. 인생의 성공을 좌우하는 일차적인 사람은 부모이다. 다시 말해 가정환경과 가정교육이 인생성공을 좌우하는 초석이 된다 하겠다. 왕대밭에서 왕대가 나듯이 훌륭한 가정환경과 가정교육 속에서 훌륭한 인재가 나오는 것이다.

현명한 부모의 지혜로운 자녀교육 방법에 대해 살펴보겠다. ▲부모로서 자녀교육을 가장 중요시해야 한다. 지락막여독서(至樂莫如讀書) 지요막여교자(至要莫如敎子) 즉 ‘지극히 즐거운 것은 독서만 함이 없음이요. 지극히 중요한 것은 자녀 교육 만함이 없음이라.’하였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은 독서요 가장 중요한 일은 자녀교육이라는 것이다. ▲엄부자모(嚴父慈母)의 부모상, 엄부자모(嚴父慈母)의 교육 방법이어야 한다. 요즈음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각은 걱정이 많다. 대체적으로 옛날보다 인내심이 적고 나약하며 책임감과 자율성도 적다는 등의 걱정을 많이 한다.

그 일차적 원인은 집안에 아버지로서의 권위와 엄부(嚴父)교육이 실종되었기 때문이고, 또한 자모(慈母)대신 과잉보호 엄마가 자칫 아이들을 나약하게 만들고 책임성과 자율성을 결여케 한다 하겠다. 이처럼 캔디와 같이 달콤하기만 한 아빠, 과잉보호 엄마에게서는 강인하고 책임감과 자율성이 강한 자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정에는 자애로움의 모성(母性)기운과 엄함의 부성(父性)기운이 조화를 이루어야 균형 잡힌 가정의 기풍이 조성될 수 있다 하겠다.

또한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엄부자모(嚴父慈母)의 교육방법, 즉 아버지는 엄하게, 어머니는 자애롭게 자식을 가르쳐야 그 자식이 엄함과 자애로움, 강인함과 부드러움의 균형 잡힌 성품을 두루 갖추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릴 때 아버지에게서 호되게 매를 맞으면 부엌에서 행주치마로 눈물을 닦아주시던 엄마의 모습이 그립기만하다.

엄부자모라고 해서 아버지는 무조건 엄하게, 어머니는 무조건 자애롭게만 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의 엄함 속에는 자애로움이 간접조명처럼 비쳐져야 하고 어머니의 자애로움 속에는 엄함이 간접조명처럼 비쳐져야 가장 이상적인 부모상이요. 지혜로운 교육방법이라 하겠다.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말없이 보며 배우고 있다.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하였다. 다시 말해 돈 잘 벌고 출세한 부모의 앞모습이 아니라 부모가 ‘인생을 어떤 자세로 살고 있느냐.’를 부모의 등 뒤에서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부모의 등 뒤 모습 즉 부모의 인생관, 철학, 삶의 태도 등이 바로 자식의 인생관, 삶의 자세를 결정한다 하겠다. 부모의 삶은 수레의 앞바퀴와 같고 자녀의 삶은 수레의 뒷바퀴와 같다. 앞바퀴가 바르게 가면 뒷바퀴 역시 바르게 따르지 않겠는가. 다산(茶山) 정약용선생의 3대(代) 즉 다산의 아버지, ‘다산’ 그리고 다산의 아들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

다산의 아버지 ‘정재원’은 진주목사 등 여러 지방의 목민관을 지냈다. 정재원은 비록 지방관의 지위였지만 학식과 덕망이 높고 공무처리가 너무 공명정대(公明正大)하여 주위에서 정승의 자격이 있는 분이라고 추앙했다고 한다. 다산은 어렸을 때 특별히 어떤 선생을 사사(師事)하여 글을 배운 적이 없다. 대부분 학덕이 높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시를 익히고 경전과 사서(史書)를 공부했다고 한다.

다산은 아버지가 여러 지방의 목민관으로 있을 때 따라 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적었는데 이것이 바로 지방 목민관들의 지침서인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저술한 배경인 것이다. 다산은 현명한 아버지의 모습, 관리로서 지녀야 할 덕목, 목민관으로서의 치적(治積) 등을 지켜보면서 관리로서 지녀야 할 덕목과 지혜를 배워 훗날 유능한 관리가 될 수 있었고 불후의 명작 ‘목민심서’를 저술하게 된 것이라 하겠다.

다산은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다산의 두 아들 ‘정학언’ ‘정학유’ 모두 훌륭한 학자이자 문인들이었다. 아버지 다산이 너무나 큰 인물로 세상에 빛나 있는지라 그러한 아버지의 명성에 가려 두 아들의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산의 두 아들 역시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다산’이 유배지에서 편지로 끊임없이 충고와 가르침을 내린 덕이라 하겠다. 이처럼 ‘다산’ 3대가 모두 훌륭한 인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로서 본받을 수 있는 모습을 자식에게 보여주고 자식은 그러한 아버지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면서 배웠고 따랐기 때문이라 하겠다. ▲그렇다, 시부시자(是父是子)라, 그 부모에 그 자식이 아니겠는가.

- (대전시민대학 인문학 교수) -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