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박사 ·고전번역가

- 艱飮野店(간음야점) -
千里行裝付一柯(천리행장부일가)한데,
餘錢七葉尙云多(여전칠엽상운다)를.
囊中戒爾深深在(낭중계이심심재)어늘,
野店斜陽見酒何(야점사양견주하)오.

- 들판의 주막에서 괴로이 마심 -
천리 먼 길을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는데,
남은 엽전 겨우 일곱이나 오히려 많다 여기네.
주머니 속의 너에게 깊이 숨어라 경계했는데,
황혼녘 들판의 주막에서 술을 봐버렸으니 어이할까.

◆지은이 김병연(金炳淵) : 순조(純祖) 때의 시인으로 일명 ‘김삿갓’.
이 시는 일생을 방랑하면서 살아온 지은이의 고달픈 인생 역정을 유감 없이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지은이는 ‘방랑시인 김삿갓’이란 이름을 얻을 만큼 일생을 방랑하면서 무수한 일화와 튀는 시를 남긴 이인(異人)이다. 방랑자가 된 것은 홍경래(洪景來)의 난을 막지 않고 항복한 김익순(金益淳)이 친 조부였는데, 과거장에 나가 김익순을 만고의 역적이라면서 신랄히 비판을 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신랄히 욕했던 김익순이 바로 자기 친조부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에 충격을 받아 하늘을 볼 수 없는 패륜아라 하여 삿갓을 눌러쓰고 지팡이 하나로 방랑의 일생을 보내게 된 것이었다.

그는 방랑 생활을 통해서 본 세상의 인심을 풍자하고, 또 거만한 자들을 놀리고, 금강산 등 명승지를 소재로 무수한 시를 남겼다. 그중 재미있는 시구를 하나만 보자. 하루는 금강산의 어떤 스님과 시를 주고받으며 놀았는데, 스님이 먼저 “아침에 입석봉(立石峯)에 오르니 구름이 발 아래 일어나네(朝登立石雲生足).”라고 선창하니, 지은이는 “저물어 황천(黃泉) 여울에 물을 마시니 손톱달이 입술에 걸렸네(暮飮黃泉月掛脣).”라 화답했다. 참으로 기막힌 대구(對句) 솜씨가 아닐 수 없다.

지팡이 하나에 몸을 의지하여 팔도를 떠도는 방랑자의 신세가 된 오랜 세월, 거지꼴과 무엇이 다르랴. 어디서 얻었는지 일곱 냥의 엽전이 주머니에 있으니, 큰 위안이 되었다. 아, 그러나 어이하랴! 소중히 간직했던 일곱 냥의 엽전이 나갈 일이 생긴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끝구를 보면 알 것이다. “황혼녘 들판의 주막에서 술을 봐버렸으니 어이할까(野店斜陽見酒何).” 이런 상황을 겪어본 이라면, 몸서리치도록 공감을 일으킬 것이다. 목마른 술꾼이 주막집 술을 봐버렸으니, 무슨 수로 참을까. 아무리 인내심이 강해도 이 순간은 절대 참지 못하리라.
이 시는 역시 ‘방랑시인 김삿갓'이란 칭호에 걸맞게, 재치와 소탈함으로써 감상자의 감정 세계를 무한히 자극한 작품이라 하겠다.

추사 김정희 귀양살이 중 부인부고 받는데

- 悼亡妻歌(도망처가) -
那將月老訟冥司(나장월노송명사)하야
來世夫妻易地爲(내세부처역지위)오.
我死君生千里外(아사군생천리외)하야
使君知我此心悲(사군지아차심비)를.

- 죽은 아내를 애도하는 노래 -
어쩌면 월하노인에게 저승의 관리와 송사케 하여
내세엔 부부가 뒤바뀌어 태어나게 할까.
그땐 그대가 살아있고 내가 천리 먼 데서 먼저 죽어
그대에게 지금 나의 이 슬픔 맛보게 하리라.

◆지은이 김정희(金正喜) : 1786(정조10)~1856(철종6) 년 간의 학자.
이 시는 기발한 시상(詩想)으로 부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정을 처절하게 그려낸, 문학사상 보기 드문 애도시(哀悼詩)라 하겠다.
지은이의 유택은 예산(禮山)에 있는데, 세상에는 지은이를 추사체(秋史體)를 창시한 서예의 명인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경학·고증학·금석학·시·산문·전각·그림·음운학·천문산학·지리학·불교학에도 통달한 천재적인 학자이며 예술가였다.

이 시는 지은이가 제주도에서 9년 간 귀양살이를 하는 도중에 부인 이씨(李氏)가 죽었다는 부고를 받고 지은 시이다. 공부와 벼슬과 몇 번의 귀양살이로 많은 세월을 부인과 이별하여 살아온 지은이로서는, 부인의 죽음에 대한 미안함과 애통함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당시엔 제주도는 사지(死地)나 다름이 없었던 곳이다. 거기서 귀양살이를 하는 것만 해도 슬픈 일인데, 하물며 오랫동안 못 봤던 부인의 죽음을 한 달 뒤에나 듣게 되었으니, 그 슬픔을 뉘라서 헤아릴까.

제1구의 ‘월하노인(月下老人)’은 ‘중매신(中媒神)’을 말한다. 지은이는 월하노인에게 부탁하여 저승의 관리들과 송사를 벌여, 다음 생애에는 꼭 자신과 죽은 부인이 다시 부부가 되게 하는데, 그 조건은 부부의 입장을 뒤바뀌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천리 밖에서 부인의 죽음을 알게 되었을 때, 지금 자신이 겪는 슬픔을 부인이 알게 되리란 것이다. 즉 부인을 잃은 비통함은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기에, 오직 입장을 바꾸어 몸소 느껴봐야만 알 수 있을 것이란 뜻이다. 얼마나 슬펐으면, 이런 표현을 쓸까. 여기에 와서는 언어가 다 쓸모가 없게 되는 것이다.

지은이는 높은 기상을 가졌지만, 부인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이처럼 간절히 드러낼 만큼의 섬세한 정서를 가진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학문과 예술계의 거봉(巨峰)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은이의 이 시는 언어의 한계성을 절실히 체험케 하는 깊은 정이 서린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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