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굴이 길 위에까지 나와 뻗는다' 의미로 이름 가져

전북 진안(鎭安)에 있는 운장산(雲長山) 산행을 다녀왔다. 산 정상(頂上)이 해발 천(千) 고지가 넘으니 낮은 산은 아니다. 산행에 대 여섯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니 만만찮다. 그래도 오랜만에 친구들과 들뜬 마음으로 출발했다. 바깥은 봄 날씨 같은데 아이젠과 스패츠를 준비하라 하니 아마도 산에는 눈이 그냥 있는 모양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최근에는 산도 별로 다니지 않았었다. 그래서 긴 시간 산행이 살짝 겁도 난다. 젊었을 적 주말이면 전국 명산을 누비며 헤매던 시절이 엊그젠데, 이제는 이 정도 산을 걱정하니 마음도 약해진 것 같다. 친구들과 서로 격려를 하며 긴 스틱을 의지해 산을 오른다. 시작부터 경사가 심해 친구들의 각자 걸음도 차이가 난다. 뽀얀 입김을 몰아쉬며 얼굴은 일그러져 눈 초점도 흐리다. 희끗한 머리털이 증명하듯 이미 청춘을 흘려보낸 친구들, 쉬엄쉬엄 가자며 보조를 맞추고 서로를 추슬러준다.

한 시간 정도 오르니 아닌 게 아니라 전(前)에 내린 눈이 쇠눈이 되어 얼음덩이 같다. 눈을 밟아도 빠지지 않고 아이젠에서 뽀드득 소리만 낸다. 정신을 차리고 시야를 넓히니 온 산이 눈 속이다. 나무 밑둥이 눈 속에 묻혀 발목을 덮었다. 몸속은 땀에 젖어 흥건한데 이마는 고드름이 달릴 것 같이 시리다. 산 정상에 가까워오니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있다.

간식을 먹으려 아늑한 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모두 눈밭이다. 바람이 윙윙대며 귓전을 스친다. 나뭇가지마다 상고대가 자연의 예술을 연출하고 있다. 바람에 씻겨 빗어진 톱날처럼 날카롭지만 신비한 자연의 예술혼이 느껴진다. 척박하고 매서운 추위에 얼음조각을 달고 버티는 나무가 경외롭다.

미끄러운 하산 길은 그래도 낫다. 여유가 있어선지 주변의 나무들도 눈에 들어오고 무엇보다 먼 산들의 겹쳐진 실루엣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높은 산은 오르기가 힘들지만 그 고통만큼 이런 즐거움을 준다.

길옆의 팥배나무 위에 노박덩굴 열매가 빈 껍질로 대롱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속 씨앗이 지금 남아있을 리 없지만 껍질이 퇴색된 채 달려 있는 모양도 이색적이다. 높은 나무를 휘감아 덩굴줄기를 걸치고 살아가는 노박덩굴은 가을철에 노란 열매의 껍질이 터지면 빨간 속 씨가 드러나 아주 매혹적인 나무다.

노박(路泊)덩굴은 한자의 의미에서 보듯 ‘덩굴이 길 위에까지 나와 뻗는다는 의미로 그렇게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이 나무는 담장이고 길이고 심지어 하늘 높이 올라가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건너뛸 정도로 줄기를 뻗는다.

노박덩굴은 노박덩굴과의 덩굴성나무로 다른 나무나 바위 등을 감고 길게 자란다. 잎은 어긋나며 타원형이다. 끝은 둥글거나 뾰족해지고 밑 부분은 쐐기형이다. 잎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있다. 암수딴그루이며 5,6월경 황록색의 꽃이 핀다. 열매는 구형(球形)이고 익으면 황색으로 세 갈래로 갈라지며 속에는 붉은색의 종자가 있다. 우리나라나 일본 등지에 자라며 어린잎은 식용하고 열매는 기름을 짜서 먹는다.

<대전광역시 평생교육문화센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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