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로 얻은 부귀는 오래 못 간다

<如說1> 부귀(富貴)를 구함은 正道로서, 얻고 못 얻음은 命.
‘부귀구지재도, 득지유명’(富貴求之在道, 得之有命) 즉 ‘부귀를 구함에 있어서는 정도(正道)로서 구해야 하나, 부귀를 얻고 얻지 못함은 운명에 달려 있다.’ 하였다.

 속인(俗人)으로서 부귀영화에 대한 욕망은 당연함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그 욕망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문제는 부귀를 어떤 방법으로 구하느냐하는 것이다. 부귀를 구하는 방법은 첫째, 정도(正道)로서 구해야하고 둘째는, 지나치게 과욕(過慾)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정도(正道)로서 과욕(過慾)하지 않고 구한 부귀영화는 충분히 누릴만한 가치가 있고 또한 남의 지탄도 받지 않으며 오래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의(不義)와 과욕(過慾)으로 구한 부귀는 지탄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오래가지 못하고 인생을 망치는 화(禍)가 될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의롭지 못한 부와 귀는 나에게 있어서 뜬 구름과 같으니라.’하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부귀를 정도(正道)로서 구하려는 노력을 한다 해서 누구나 다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귀를 얻고 얻지 못함은 하늘의 명 즉 운명에 달려 있기 때문에 얻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모사재인(謀事在人) 성사재천(成事在天) 즉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일을 성사시키는 것은 하늘에 있기 때문에 노력을 다한다 해도 얻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즉 인간으로서 부귀를 구하려는 노력은 다하지만 부귀를 얻고 얻지 못함은 그저 하늘의 뜻에 맡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부귀가 본래부터 자기에게 주어진 것인 양 부귀에 대한 집착으로 부질없는 욕망만 불태운다 하였다. 공자께서는 ‘부귀를 구할 수 있다면 마부 노릇이라도 하겠지만 하늘의 명을 따르겠다.’하였다. 다시 말해 공자께서는 부귀가 하늘이 주어진 명이 아님을 깨닫고 학문과 구도(求道)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참 진리를 깨닫고 행하지 못하여 부귀에 대한 집착으로 일생을 미망(迷妄)속에서 헤매이는가 하면 불의와 탐욕으로 얻은 잠시의 부귀영화로 인하여 끝내는 비참한 생을 맞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음을 알 수 있다.
 

 

안중근과 이완용의 삶

<如說2> 義로운 삶은 영원히 빛나고, 不義의 삶은 만고에 처량하다.
‘서수도덕자, 적막일시(棲守道德者, 寂寞一時) 의아권세자, 처량만고(依阿權勢者,凄凉萬古)’ ‘도덕을 지키며 사는 자는 한 때가 적막할 뿐이고 권세에 아부하는 자는 만고에 처량하니라.’하였다. 권세에 아부하지 않고 정도(正道)를 걸으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의로움을 지키며 사는 인생은 정도(正道)와 의로움을 지키며 사느라 한때는 외롭고 힘들 수 있으나 결국 그 인생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되고 명예로운 이름을 남기게 된다.

그러나 권세에 아부하고 불의와 타협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인생은 그 영화가 오래일 것 같으나 그 것은 순간 일뿐, 결국은 지탄을 받게 되고 파멸하게 된다. 나아가 후세에 씻지 못할 오명을 남기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같은 시대를 살다간 안중근의사와 같은 애국지사와 이완용 같은 매국노의 인생이 이를 말해주고 있음이다. 안중근의사의 31년 짧은 생애, 조국에 바친 고난의 생애였지만 민족의 애국자로 영원히 그 이름을 빛내고 있고, 이완용 외무대신의 생애, 조국을 팔아먹은 대가로 부귀영화 누린 생애였지만 민족의 반역자로 만고에 처량한 그 이름을 남기고 있지 않는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如說3> 달인(達人)은 만고에 처량함을 취하지 않는다.
달인, 관물외지물(達人, 觀物外之物) 사신후지신(思身後之身) 즉 ‘세상 이치를 깨달은 사람은 사물 밖의 사물을 보고 몸 밖의 몸을 생각한다.’ 하였다. 다시 말해 세상 이치를 깨달은 사람은 겉으로 나타나는 돈, 권력의 이로움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숨어있는 해로움의 속성까지 꿰뚫어 보아서 돈, 권력에 대한 욕망과 집착에 빠지지 않는다.

또한 살아있을 때의 명예나 평판뿐만 아니라 죽은 후의 명예나 평판까지 염려하여 언제나 의로움과 정도(正道)를 잃지 않도록 삼가고 조심한다. 개관사정(蓋棺事定) 즉 ‘사람은 죽고 난 뒤에라야 올바르고 정당한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이다.’라 하였다. ▲그렇다. 의(義)로운 삶을 사느라 한 때의 고난과 외로움을 견딜지언정 한 때의 영화를 위해 만고에 처량한 불의(不義)의 삶을 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 (대전시민대학 인문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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