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예보에 오늘 최저 기온은 영하(零下)로 내려간다는데 한낮엔 덥다. 차내에서는 창문을 열어야 할 정도다. 경상도 지방은 벌써 20도를 오르내린다니 올해도 역시 봄과 여름의 경계가 모호하지 않을까 싶다. 4월 초순(初旬)의 날씨치곤 예전과 비교해도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대전 천변의 아파트 담장에는 벌써 진달래가 만발하여 눈길을 잡는다. 이렇게 매년 계절 변화의 차이를 몸으로 느끼며 살기가 쉽지 않은데, 이상(異常)기온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야외 현장수업을 해야 하는데 바람이 차서 나서기가 망설여진다. 그래도 날씨가 화창하니 봄맞이 겸하여 야외수업을 나서기로 했다. 가까운 이사동으로 승용차에 나눠 타고 출발했다.

고속도로 다리 밑의 왕버들도 물이 올라 녹색이 완연하다. 학창시절 등굣길에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던 나무였는데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아름드리에 주름진 줄기껍질이 연륜을 나타내는 것 같아 숙연해진다. 냇가를 따라 이어 서 있는 버드나무들을 보니 옛 어른들을 뵙는 것 같다.

도랑을 따라 빙 돌아들어야 나타나는 산 밑의 동네. 우마차도 지날 길이 없어 도랑 둑방길이 주 통로였는데, 지금도 그 길을 따라 찻길이 열렸다. 산자락엔 옛 조상들이 후손들의 정성어린 손길로 풀 한포기 없는 유택(幽宅)에 누워 봄볕을 즐기고 계시다.

산모롱이를 돌아 동네 고샅을 지나니 목적지인 영귀대(詠歸臺)가 눈에 들어온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내 조상들의 체취를 간직한 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의 생가(生家)다. 뒤켠엔 조부의 영정(影幀)을 모신 오적당(吾適堂)이 있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성리학의 범주를 꿰뚫으셨는지 날카로운 눈빛으로 북향을 하고 두루마리 속에 앉아 계신다. 어려서는 꽤나 무서운 모습이어서 문을 열기조차 쉽지 않은 곳이었다.

사당 안에 있는 바위솔, 맥문동, 백철쭉, 백 년은 족히 넘을 배롱나무, 그리고 바닥에 깔린 잡다한 풀들을 헤아리고 뒤쪽으로 돌아가니 매실나무의 분홍색 꽃봉오리가 곧 터질듯이 망울망울 달려있다. 3층 높이는 될 꽤 큰 나무다. 양쪽으로 두 그루였는데 한 나무는 고사했는지 몇 해 전에 고사목이 철거되고 흔적도 없다. 지금 서 있는 나무도 꽃은 흐드러지나 열매는 실하지 않다. 꽤 나이가 많은 고목으로 마당의 노송(老松)과 세월을 같이 하며 생가터를 지키는 나무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매화꽃이 만발할 것 같다.

매실나무는 장미과의 낙엽 소교목으로 키는 4~10미터 정도 자란다. 나무껍질은 회색으로 불규칙하게 갈라지며 어린 가지는 녹색이다. 잎은 어긋나며 타원형이다. 잎 끝은 쐐기형이고 가장자리에는 뾰족한 톱니가 있다. 꽃은 잎이 나기 전에 2~4월에 피고, 열매는 구형(球形)으로 6월경 황색으로 익는다. 살구나무와 닮았지만 어린 가지는 녹색이며 종자가 과육과 잘 분리되지 않는 특성이 있다.

꽃을 매화(梅花)라 하며 옛 선비들이 좋아하고 시와 그림으로 사랑을 받았던 나무다. 사군자(四君子)인 매란국죽(梅蘭菊竹)의 하나로 매화는 지조(志操)를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했다. 신재용 선생은 이 매실나무를‘탐낼 만큼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맺는 나무’라 하여 열매를‘매실(梅實)’이라 불렀다고 한다.

<대전광역시 평생교육문화센터 강사>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