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 회고록'일하는 보람으로 산다' 추록 발간
‘일로매진(一路邁進)’과 ‘자강불식(自彊不息)’을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았던 유림(裕林) 이인구(李麟求) 계룡건설산업㈜ 명예회장. 그가 80대 중반 고개를 넘는 2015 을미년(乙未年)을 맞아 새로운 좌우명을 자신의 집무실에 내걸었으니, ‘관원(觀遠)’이란 두 글자가 바로 그것이다.
‘뒤를 돌아볼 겨를 없이 앞만 보고 내닫는다’라는 뜻의 ‘일로매진’은 계룡건설 창립기에, ‘쉬지 않고 꾸준히,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스스로 베풀며 강자가 되라’는 의미의 ‘자강불식’은 계룡건설 중흥기에 각각 그의 좌우명이 됐다.
이제 인생을 서서히 정리해야 할 시점. 이 명예회장은 ‘멀리 높게 보라’, ‘욕심만 갖고 세상사를 근시안적 눈으로 바라보지 않겠다’라는 교훈을 주는 ‘관원’이란 단어를 자신은 물론 세인들에게 삶의 격언으로 제시한 것이다.
회고록 추록 제1장에는 ▲서해안 기름유출사고 수습 ▲유림공원 조성 기부채납 ▲효평동 공적비 건립 ▲서해 5도 포탄세례 ▲공우회(工友會) 재건과 육종회(陸綜會) 지원 ▲좌우명을 바꾸며 ▲건설업계의 대공황을 극복하다 ▲전국 관급공사 수주 1위 달성 ▲남극기지 공사에 뛰어들며 ▲해외건설의 고동을 울리면서 ▲나의 병원생활과 후계자 상속 등의 글이 수록돼 있는데 마치 삶의 마지막 여정을 떠나기에 앞서 주변에 족적을 남기려는 노구(老軀)의 의지인 듯 ‘유훈(遺訓)’, ‘유언장’ 등을 언급한 사실이 주목된다.
2007년 12월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를 비롯해 이듬해 터진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침탈 시도, 이후 벌어진 세종시 수정안 논란, 대전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 실패, 신종플루 공포, 천안함 폭침사변, 지방자치 재정의 불안정,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구축 난항, 대전도시철도 2호선 건설을 둘러싼 혼란, 엑스포과학공원 재창조사업,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에 따른 시비, 안중근 의사 기념비 건립의 역사논쟁, 북한 무인정찰기 소동,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한국인 위안부 문제, 호남 KTX(고속철) 서대전역 미경유 등의 이슈에 관한 그의 생생한 목소리가 배어있다.
이 명예회장은 “나도 유한인생(有限人生)인지라 점점 기억력이 흐려지고 지난 일을 깜빡 잊어버리는 한계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기억력이 살아있는 현 시점에 추록을 내고 미수 이후의 유훈(遺訓)을 새겨볼까 한다”라며 자신의 총기(聰氣)가 그리 오래 남아있지 않을 것임을 안타까워 하며 추록을 펴내게 된 소회를 솔직하게 밝혔다.
독자(獨子)인 승찬 씨를 후계자로 삼아 회사 업무를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난 이 명예회장은 이번 회고록에서 “유능하고 충성스러운 나의 후계 임직원들이 한결같이 황소 같은 뚝심으로 밀고 나가 진취적인 계룡의 기상을 발휘할 것”이라며 ‘수주 10조 원 돌파, 전국 건설업계 톱10 진입’ 등을 골자로 한 계룡건설의 ‘비전 2020’ 달성에 기대감을 표했다.
이와 함께 “나의 상속에 관한 유언장은 미리 변호사를 통해 작성해 놓았다. 상속은 아내가 집행하도록 조치했다”며 언제일지 모를 세상과의 작별을 준비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1931년 3월 8일 충남 대덕군 동면 효평리(현 대전 동구 효평동) 187번지에서 유학자인 이성규 선생과 양매순 여사 사이의 5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이 명예회장은 대전동명초, 대전중·고, 충남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충남대 명예법학박사학위, 대전대 명예경제학박사학위, 한밭대 명예공학박사학위 등을 받았다.
40세이던 1970년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계룡건설을 창립한 그는 대전상공회의소 회장, 대전고·충남대 총동창회장, 제13·15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계룡장학재단 이사장 등을 맡고 있으며 그간 화랑무공훈장, 국민훈장 동백장, 산업포장, 한국건축대상, 대전시민대상, 자랑스러운 충청인상 등을 수상했다.
최 일 기자 choil@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