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次韻送季兒還京(차운송계아환경) -
星河漸落曉雲多(성하점락효운다)한데,
萬樹煙霞似綠波(만수연하사록파)를.
鷄鳴將送漢陽客(계명장송한양객)하니,
此別年年幾度過(차별년년기도과)오.
- 서울로 돌아가는 막내아들을 보내며 차운(次韻)하여 짓다 -
은하수는 점점 기울고 새벽 구름은 자욱한데,
숲을 감싼 안개는 푸른 물결 같구나.
닭이 울어 이제 한양 나그네를 보내야하니,
이런 이별은 해마다 그 몇 번이나 겪는가.

◆지은이 서령수합(徐令壽閤):1753(영조29)~1823(순조23) 때 여류시인.
이 시는 자식을 사랑하는 모정이 소복이 담겨 있는 정감 넘치는 작품이라 하겠다.
누구든 가장 사랑하는 존재는 바로 자식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정은 세월과 장소를 초월하여 영원히 끊을 수 없는 정인 것이다. 그래서 부모자식 간의 윤리를 예로부터 ‘천륜(天倫)’이라 하는 것이다.

이별 중에 가장 아픈 이별은 바로 자식과의 이별이다. 물론 이성(異性) 간의 이별 또한 아쉽고 아픈 것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감정에서 나온 반짝이는 불꽃이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간의 이별은 그것과는 다르다. 반짝이는 불꽃이 아니라, 영원히 꺼지지 않는 태양이다.
지은이 또한 어머니인지라, 사랑하는 자식과 헤어짐에 임해서는 아픔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 수의 시로 아픈 마음을 풀고자 한 것이다.

새벽잠을 깨어 심란한 마음으로 마당을 거닐었다. 은하수는 점차 희미해지고 구름은 허공을 메우고 있었다. 저 건너 숲을 바라보았을 때, 자욱한 안개는 마치 출렁이는 물결처럼 꿈틀거렸다. 구름과 안개에 가려져 흐릿해진 풍광은 자식과의 이별을 앞둔 어머니의 어두운 속내와 흡사하다. 드디어 새벽닭이 ‘꼬끼오’하고 떠나보내라는 신호를 울리자, 잡았던 막내아들의 손을 놓고 작별을 해야만 했다. 장성하면 세상에 나가 대장부의 일을 해야 하기에 마냥 붙들어둘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끝구에서 “이런 이별은 해마다 그 몇 번이나 겪는가.”라는 탄식을 토하였다. 자식과의 이별은 예나 지금이나 늘 큰 아픔을 안겨준다.
이 시는 이별의 슬픔을 뚜렷이 드러내진 않지만, 그러나 아파하는 정을 분명히 느끼도록 한다. 마치 무형의 향내가 사람을 취하게 하듯 하다.

 

 

겨울에는 글을 읽고 여름에는 시를 읊고

- 讀書有感(독서유감) -
冬讀其書夏詠詩(동독기서하영시)하야
鷄窓事業各隨時(계창사업각수시)를.
聊將魯論看心法(요장로론간심법)하니,
入德之基在學而(입덕지기재학이)를.

- 독서 후 느낀 점이 있어서 -
겨울에는 글을 읽고 여름에는 시를 읊어
서재에서 하는 공부 철마다 다르다네.
『논어(論語)』를 펴서 수양법을 살펴보니,
덕(德)에 들어가는 길은 「학이(學而)」편에 있네.

◆지은이 김삼의당(金三宜堂):1769(영조45)~1823(순조24) 때 여류시인.
이 시는 감상문(感想文)의 성질을 가진 작품이다. 이 시는 본래 여러 수로 이어져 있는데, 여기서는 한 수만 음미해보겠다.
지은이는 김인혁(金仁赫)의 딸로, 시뿐 아니라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래서 남편 하립과 시를 주고받기도 했다.

옛날에는 공부를 계절에 맞게 했다. 이는 계절에 따라 사람의 정서가 변한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추울 때는 당연히 긴장감을 갖게 되고, 그래서 사색을 요하는 글을 읽는 게 유리하다. 반면, 날이 더워지면 긴장이 풀려 생각이 자유로워진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겨울에는 산문(散文)을 읽으면서 철리(哲理)를 연구했고, 여름에는 운문(韻文)의 시를 읊으면서 막혔던 가슴을 풀어내었던 것이다.

지은이가 이 시를 지은 계절은 아마 겨울이었으리라. 그러기에 사색의 글인 『논어(論語)』를 읽었던 것 아니겠는가. 지은이는 『논어』 중에서도 가장 앞에 있는 「학이(學而)」편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배우고 늘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로 시작하는 「학이」편은 삶에 대한 바람직한 자세를 가르치고 있다. 누구든 이 편을 깊이 읽고 나면 수양의 뼈대를 세울 수 있게 될 것이다.

퇴계(退溪) 선생도 겨울 석달을 산중에서 「학이」편만 숙독했다고 한다. 사실 동서(東西)의 많은 옛 경전들이 당시의 원시적인 과학 상식을 토대로 하여 지어졌기에, 고도의 과학시대인 오늘날에 와서는 그 허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에 비해 『논어』는 과학적 지식을 필요치 않는 일상생활에 소용되는 지혜만 말했기에 그 가치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이 시에서 지은이는 독서법과 수양법의 핵심을 간단히 서술하고 있다. 이점에서 본다면 지은이는 시인이기도 하지만, 전문적인 도학자(道學者)의 분위기도 가진 인물임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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