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박사·고전번역가

김기의 [한시감상]
128 - 有鄕生挑之以詩拒之(유향생도지이시거지) -
我本荊山和氏璧(아본형산화씨벽)인데,
偶然流落洛江頭(우연유락낙강두)를.
秦城十五猶難得(진성십오유난득)이어늘,
何況鄕閭一府儒(하황향려일부유)에랴.

- 시골의 어떤 선비가 유혹하거늘 시로써 물리치다 -
나는 본래 형산(荊山)의 화씨벽(和氏璧)인데,
우연히 낙동강 가로 떠내려 왔을 뿐.
진(秦)나라의 성(城) 열 다섯 개로도 가질 수 없거늘,
하물며 시골의 일개 썩은 선비 따위이랴.

◆지은이 초옥(楚玉): 경상도 의성(義城)의 기생. 생몰 연대는 모름.
이 시는 기녀의 작품인데, 번쩍이는 재치와 당찬 용기가 가득 서려 있다. 한 수의 시가 백만의 대군을 물리칠 수 있음을 보겠다.
사람들은 기생들을 얕잡아보지만, 그러다가 큰 낭패를 당할 수 있다. 특히 이 시의 지은이 같이 학문과 자부심 높은 기생에게 함부로 굴다가는 톡톡히 창피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의 지은이는 고사(古事)를 끌어들여 자신의 뜻을 교묘히 펼쳤다는 데서 대단한 학문과 시재(試才)를 가졌음을 알 것이다. 지은이는 기명(妓名)이 ‘초옥(楚玉)’이라는 데서 보듯이, 재능과 함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것 같다. 초옥은 바로 초나라 형산(荊山)에서 화씨(和氏)가 구한 옥인 화씨벽(和氏璧)을 말한다.

화씨벽은 천하의 보옥(寶玉)으로 이름났다. 변화(卞和)라는 사람이 초나라 형산에서 옥을 얻었는데, 이 옥이 바로 ‘화씨벽’이다. 그런데 이 옥이 우여곡절 끝에 조(趙)나라로 흘러가게 됐다.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이 이야기를 듣고 진나라의 성 15개와 화씨벽을 맞바꾸기로 하고 화씨벽을 진나라로 가져갔다. 그러나 진나라에서는 화씨벽을 손에 넣고서는 15개의 성을 조나라에게 주지 않았다. 이에 조나라의 인상여(藺相如)가 기지를 발휘해 화씨벽을 되찾아 왔다. 이로부터 화씨벽은 15개의 성에 상응할 만큼의 값어치를 가진 보물이 된 것이다.

이 시의 지은이 초옥은 자신을 화씨벽으로 자부했다. 글 솜씨를 보면 지은이는 역시 화씨벽의 값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팔자가 기박해 낙동강 변 고을의 기생으로 전락했지만, 일개의 불량스런 남정네에게 몸을 허락할 수 없다고 여겼다. 텃세, 문벌세를 내세우는 촌 양반의 기고만장한 기세를 시 한 수로 눌러버렸던 것이다.
지은이에게서의 시는 미력한 자신을 지키는 보도(寶刀)인 것이다.

◆한시 이야기: 조선 초에는 새 왕조의 위업을 송축한 시가 많았다. 이때는 권근(權近), 정도전(鄭道傳), 정이오(鄭以吾) 등이 유명했다. 이 시기에는 여전히 송시(宋詩)를 숭상했으며 걸출한 작품이 없었다. 다만 정이오 등이 당풍(唐風)의 시를 지어 국초의 시단(詩壇)을 장식했다.

 

 

타향살이 기녀의 서글픈 설

김기의 [한시감상] 129 - 除夕(제석) -
歲暮寒窓客不眠(세모한창객불면)하야
思兄憶弟意凄然(사형억제의처연)을.
孤燈欲滅愁難歇(고등욕멸수난헐)하야
泣抱朱絃餞舊年(읍포주현전구년)을.

- 한해의 마지막 밤 -
세모(歲暮)의 차가운 창문 아래 잠 못 드는 객은
형제를 생각하니 마음이 서글퍼지네.
외로운 등불은 꺼져가려 하건만 슬픔은 사라지지 않아,
거문고를 부둥켜안고 울면서 한 해를 보내네.

◆지은이 평양 기생 : 인적 사항은 알 수 없다.
이 시는 설이 돼도 고향의 부모형제를 만나볼 수 없는 기녀의 서글픈 운명을 가슴 아리게 읊어낸 작품이다.
정든 가족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의 뇌리 한쪽엔 늘 가족 생각을 담고 다닌다. 그러다가 명절이 되면 가족을 찾아 천리도 멀다 않고 달려간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풍속이다. 그런데 기쁜 명절을 도리어 눈물로 보내는 이들도 있다. 바로 고향의 가족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차라리 이도 저도 없다면 포기나 할 것이지만, 분명히 갈곳이 있음에도 가지 못한다면, 참으로 쓸쓸한 명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 시의 지은이 역시 기녀의 몸으로 천리 타향에 매인 몸이 돼있는 것이다. 여인의 이름이 기녀의 신분임을 알리는 기적(妓籍)에 한 번 오르게 되면, 그때부터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신세가 된다. 꽃다운 나이에 이 신세가 되고 나면, 그 슬픔을 어찌 필설로 다 형용할 수 있겠는가. 보기와는 달리 옛 기생들은 기방(妓房)에 몸을 맨 노예나 다름이 없었다. 이러한 신세의 지은이는 한해를 보내는 마지막 밤, 즉 설날 전야(前夜)에 고향의 부모형제를 그리워하며 이 시를 지은 것이다.

남들은 모두 가족끼리 모여 정다운데, 홀로 타관의 나그네가 돼 잠 못 드는 섣달 그믐날 밤. 그리운 형제를 생각하니, 자신이 기막힌 신세에 처해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미 밤이 깊어 등불은 가물가물 꺼져가려 하지만, 슬픔은 도리어 더 사무쳐 오는 것이다. 그래서 흐느껴 울면서 12줄 거문고를 부둥켜안고 한해를 혼자서 작별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시는 타관에서 홀로 설을 맞는 쓸쓸한 심정을 눈앞의 전경과 잘 조화시켜 호소력 있게 드러내었다 하겠다.

◆한시 이야기: 조선 초·중기 때부터 큰 시인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성간(成侃), 김수온(金守溫), 서거정(徐居正), 김종직(金宗直), 김시습(金時習) 등이 대표자다. 특히 서거정은 ‘동문선(東文選)’과 ‘동인시화(東人詩話)’, 김종직은 ‘동문수(東文粹)’와 ‘청구풍아(靑丘風雅)’를 찬술해 후에의 문인들에 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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