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나리도 약용하는 식물이다. 자료에 의하면 뿌리줄기를 가을철에 캐어 깨끗이 씻어 햇볕에 말린 것을 약재로 사용한다. 몸이 허약해서 생기는 해수(咳嗽), 천식(喘息), 가래에 피가 섞이는 증상에 활용된다. 건위, 소화 작용이 있어서 섭취한 음식물이 소화가 안 되거나 배가 더부룩하고 그득한 것을 치료한다. 대장(大腸) 출혈에도 지혈반응을 한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이 나물이 자양강장의 효능이 있어 양기(陽氣)를 돋우는 효능이 있고, 장(腸)을 튼튼하게 할 때는 뿌리를 푹 달여서 먹으면 효과가 있다고 했다. 또는 장염(腸炎)이나 치질 치료에도 응용했다.
애기나리는 산속 나무 밑 음지에서 주로 자라는데, 형태는 둥굴레와 비슷하고 줄기 끝에 작은 흰 꽃이 앙증맞게 핀다. 그나마 꽃도 고개를 숙여 눈에 잘 띄지도 않는 풀이다. 그렇게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도 관심을 받지도 못한다. 정상 부분의 능선을 따라 애기나리가 많은 것을 보고 반갑기도 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해발이 낮지도 않은 곳인데 작고 연약한 풀이 군락을 이루니 그 생명력이 놀랍다.

쉬어갈 만한 곳이면 어김없이 작달막한 애기나리가 옹기종기 모여 시위를 하는 듯하다. 앙증맞은 키에 꽃을 달고 하늘을 볼 듯 한데 땅을 보고 수줍게 서 있다. 햇빛도 잘 안 드는 커다란 나무 밑에서 제 영역을 확보하고 당당하게 숲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칼날 같은 능선에서 겨울의 혹한(酷寒)을 견디고 살아남아 식구들을 늘려가는 풀이다.

엊그제 비가 온 후라 송홧가루도 말끔하게 씻겨 풀잎도 깨끗하다. 산등성이를 따라 나뭇잎이 각자 나무 특성에 따라 연한 녹색으로 띠를 두른 듯하다. 이맘때 산에 오면 무아지경(無我之境)이다. 철따라 변하는 자연의 모습은 복잡한 인생사를 잊게 하는 청량제다. 그 속에 안겨 그저 바라만 봐도 답답한 마음이 가라앉는다.

갖가지 나무들이 제 이파리를 달고 서로 부비며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 사람들은 무엇일까 되물어진다. 조용히 제 할 일을 생각하며, 또 여름에 할 일을 준비하고, 가을, 겨울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대비하는 생태 현상을 살펴보면 사람이 배워야 할 점이 많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을 대등하게 공존해야 할 상대가 아닌가 싶다.

모처럼 산행에 나서 망중한(忙中閑)을 즐긴다.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했던 몸 관리에 표가 난다. 하산하는 길에 다리에 쥐가 나며 걸음걸이가 불편하다. 이제는 청춘이 아니다. 친구들도 모두 이순(耳順)을 넘겼다. 노년의 초입에서 각자 다시 자리를 잡아간다. 살아온 세월은 같지만 걸어온 길도, 살아온 방법도 다르고, 건강도 차이가 난다.

언제까지나 같이 가고픈 친구들. 서로 부축하며 내려오는 동창들이 고맙다. 이젠 건강이야라는 말을 되풀이 하며 우정을 확인한다. 도덕봉에 덮여 있는 나뭇잎이 신선의 도포자락 같다. 그 속에 묻힌 우리는 신선과 노니는 기분이다. 참 좋은 계절이다.

<대전시 평생교육문화센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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