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팠던 시절, 이른 봄 찔레순은 배고픔을 잠시 잊게 하기도…

약용식물 강의를 하며 야외(野外) 현장수업을 많이 하다 보니 시내 주변 고샅고샅을 다닐 기회가 많다. 계절마다 바뀌는 환경에 따라 풀과 나무들이 자연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는 지를 직접 보고 느낀다. 우리들이 미처 몰랐던 그 적응력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문명이 발달하며 합리적이고 유용한 결과를 창출해내는 과학(科學)이란 것을 발전시켜 왔지만, 풀과 나무들이 자연의 법칙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방법은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과학을 능가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식물들의 생존 및 적응방법이 실로 과학적이고 절묘함을 알 수 있다.

지난번에는 중구(中區)에 있는 금동(錦洞)을 다녀왔다.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가 있고 산세(山勢)가 비단결같이 아름다운 곳이라 하여 금동이란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모랭이 마을은 계곡이 꽤나 깊은 곳이다. 6·25 전쟁 때에도 피해가 없었던 곳이라고 하니 딴 세상 같은 곳이다. 실개천과 평행선을 그리며 이어진 길을 따라 죽 올라가니 논두렁, 밭두렁, 둑방길에서 갖가지 풀들이 모양을 내고 마중을 한다.

여기도 대전시(大田市)다. 농사를 짓는 땅이 많지만 오가는 사람은 드물다. 맑은 물이 흐르는 조그만 도랑에 고마리, 여뀌가 빽빽하다. 어린 시절 냇가에서 물고기 잡을 때 꽤나 시달렸던 여뀌가 이곳에도 많았다. 아직 외래종의 침입이 적고 순수함이 잘 보존된 곳이다. 도랑 경사면에 하얀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어디고 흔하게 잘 자라서 별 관심을 못 받지만 백색(白色)의 꽃이 군락을 이루며 향긋한 꽃내음이 싱그러운 나무다.

찔레나무는 시골생활을 한 사람은 누구든 한 번쯤 옛 추억에 잠기게 한다. 억센 가시에 찔려 괴로웠던 일, 배 고픈 시절 이른 봄에 나온 찔레순은 배고픔을 잠시 잊게 해 주던 나무였다. 길가나 산자락, 어디고 흔하게 자라는 나무다. 냇가를 따라 만발한 찔레꽃이 흰 천을 두른 듯하다.

가까이 보니 진딧물이 극성이다. 날씨가 더워지니 각종 벌레들이 창궐(猖獗)을 하여 풀숲에 들기가 겁이 날 정도다. 찔레나무는 장미과의 낙엽관목으로 2∼4미터 정도 자란다. 줄기와 어린 가지에 잔털이 많고 갈고리 같은 가시가 있다. 나무껍질은 회색으로 불규칙하게 갈라져 조각나며 떨어진다. 잎은 어긋나며 대여섯 개로 이루어진 복엽형태다. 잎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있고 끝은 뾰족하다. 꽃은 5∼6월에 흰색 또는 연분홍으로 가지 끝에 달려 핀다. 열매는 가을에 둥글고 붉게 익는다.

<대전시 평생교육문화센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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