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 1998년 7월 7일 미국 블랙울프런 골프장.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US오픈에 참가한 박세리 선수는 18번홀에서 큰 실수를 범했다. 우승컵을 놓고 벌인 연장전 마지막 홀에서 티샷한 공이 해저드(연못) 경사면에 간신히 걸렸다. 천만다행으로 물속에 빠지지는 않았으나 1벌타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 자칫 우승컵을 경쟁자에게 넘겨줄 수도 있어 흔들릴 법도 했다. 하지만 신발과 양말을 벗고 해저드로 들어간 박세리는 과감한 플레이로 위기에서 벗어나, 결국 우승컵을 가슴에 안았다. 박세리의 우승 장면은 IMF 구제금융 시대를 살며 절망에 빠져있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기에 충분했다. 햇빛에 그을린 새까만 종아리와는 달리 새하얀 그녀의 맨발은 그것 자체로 감동이었다. TV를 통해 이 장면을 지켜본 10살을 갓 넘긴 초등학교 소녀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장면 2 : 2008년 6월 30일 제63회 LPGA US오픈 대회에서 박인비가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1988년생 박인비는 언론 인터뷰에서 “10년 전 박세리 언니가 우승하는 것을 보고 골프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박인비에게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 불빛은 미국 여자골프계에서 변방이었던 한국선수들이 이제는 주역으로 나서며 ‘세리 키즈’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축포와 다름없었다.#장면 3 : 2009년 1월 15일 미국 뉴욕 허드슨 강 상공.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이륙한 US항공 소속 A320 여객기가 강물 위로 비상착륙을 시도했다. 이륙한지 1분만에 새 떼와 부딪혀 엔진이 꺼져 회항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승객과 승무원 155명의 목숨은 조종사 체슬린 설렌버거(57)의 손에 달려 있었다. 활강 속도나 각도에서 조금의 오차가 발생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객기 동체는 강물 위를 스치듯 내려앉았고 승객과 승무원 모두는 목숨을 건졌으며 동체도 거의 손상을 입지 않았다. 미국 언론들은 강물에 반쯤 잠긴 비행기 날개위에 올라가 구조를 기다리는 탑승객의 사진을 전세계에 전했다. ‘허드슨 강의 기적’을 만든 것은 공군 전투기 조종사 출신의 기장이 빚어낸 뛰어난 조종술 덕분이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대니얼 코일의 ‘탤런트코드’와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가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이 두 책을 관통하는 것은 ‘1만 시간의 법칙’이다. 어떤 분야든 숙달되기 위해서는 하루 3시간이상, 10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바로 달인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탤런트코드에서 저자는 박세리 선수의 US오픈 우승으로 동기부여가 된지 10년이 지나자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골프선수가 30%를 차지하는 현상을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또한 빌게이츠나 비틀즈도 1만 시간 이상 노력을 했기 때문에 영광을 차지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말콤 글래드웰은 예술가나 스포츠 선수, 소설가 등 어떤 분야에서든 1만 시간 보다 적은 시간을 투입해 세계적 수준의 전문가가 된 경우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는 월가의 실패한 은행들에서 사례를 찾는다. 월가의 젊은 사람들은 적절한 경험과 훈련을 쌓지 못했기 때문에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 설렌버거 기장은 수많은 비행 훈련과 경험이 있었기에 ‘허드슨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콤 글래드웰은 사고 이후 인터뷰에서 말했다. 1만 9000시간의 비행 기록을 가진 설렌버거 기장이 바로 아웃라이어, 즉 달인이 될 수 있는 이유다.과거 10년, 또 그전 10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돌이켜본다. 그리고 앞으로 10년 동안 무엇을 할지에 대해 자문해 본다. 과연 나는 ‘1만 시간’을 들여 달인이 될 수 있을까. 김수연( KAIST 모바일하버사업단, 전 대전매일 기자)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