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 暮春呈女兄鷗亭道人(모춘정여형구정도인) -
魛魚時節養蠶天(도어시절양잠천)에
遠近靑山總似煙(원근청산총사연)을.
病起不知春已暮(병기부지춘이모)한데,
桃花落盡小窓前(도화락진소창전)을.

- 저문 봄에 구정도인(鷗亭道人) 언니께 드림 -
웅어 잡는 철이요 누에 치는 시절인데,
원근(遠近)의 청산(靑山)은 연기처럼 뿌옇구나.
앓다가 일어나 봄이 저물었음을 알지 못했는데,
창문 앞의 복사꽃은 어느 듯 다 져버렸네.

◆지은이 죽향(竹香) : 평양 기생으로 1800년 전후에 생존했음.
이 시는 봄날이 이미 다해버렸음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떨어진 복사꽃을 통해 간절히 드러낸 작품이다.
이미 대지에 훈풍(薰風)이 불어왔기에 봄이 온 줄을 지은이도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멸치과에 속하는 웅어 잡이와 누에치는 일로 바빠지는 철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병이 나서 방안에 누워 있었기에, 세상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으로 직접 목도하지는 못했었다. 그래서 지은이는 화려한 봄 전경을 상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감정은 병고(病苦)에 시달리게 되면 예민해지고 또 여려진다. 그리고 병상에서 일어나게 되면 왠지 모를 기대감에 가슴이 설레게 된다. 지은이는 병상에서 막 일어나자마자 창 앞의 복사꽃이 생각났다. 복사꽃은 봄의 화사함을 상징하는 꽃으로 어여쁜 연분홍 빛을 발산한다. 그래서 보는 이는 누구나 탐스럽게 여긴다. 지은이 또한 만발한 봄날의 복사꽃이 보고파 창문을 열어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봄이 저물어버려 탐스런 복사꽃은 가루가 되어 지상에 처절히 흩어져 있는 것이다. 병상에서 막 일어났을 때의 설렘, 그리고 복사꽃에 대한 기대감이 일순간에 와락 무너진 것이다.

지은이는 이 시에서 봄이 다가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을 ‘병고’와 ‘져버린 복사꽃’을 통해 심각히 드러내었다. 즉 병상에서 막 일어났을 때 가지는 설렘과 기대감이 다 져버린 복사꽃 때문에 깨져버렸음을 내비치고, 또 그로써 봄이 다 가버렸음을 간절히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아까운 봄날이 훌쩍 다 지나 가버렸음을 아쉬워하는 심정을 ‘아쉽다’는 말을 쓰지 않고도 완벽히 드러낸 작품이라 하겠다.

◆한시 이야기: 선조(宣祖) 때 와서 조선 시단은 당시(唐詩)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 계기를 만든 것은 박순(朴淳)이며, 그를 통해 ‘삼당시인(三唐詩人)’, 즉 이달(李達)·백광훈(白光熏)·최경창(崔慶昌)이 나왔다. 또한 고경명(高敬命)·임제(林悌)·권필(權畢)·차천로(車天輅)·유몽인(柳夢寅) 등도 유명했고, 여류로는 황진이(黃眞伊)·이매창(李梅窓)·이옥봉(李玉峰)·허난설헌(許蘭雪軒) 등이 나왔다.
 

 

家系 잇지 못하는 비통함

[한시감상]
135 - 尊舅以求螟事行次坡州(존구이구명사행차파주) -
他人有子我求螟(타인유자아구명)하니,
病舅登程淚幾零(병구등정루기령)을.
日夜祈望惟在此(일야기망유재차)하니,
鳳雛何處生寧馨(봉추하처생영형)고.

- 시아버님이 양자를 구하러 파주(坡州)로 가시다 -
남들은 아들이 있지만 나는 양자를 구해야 하니,
병든 시아버님 길 떠나면서 얼마나 우셨을까.
자나깨나 오직 후사 얻기만을 기원했으니,
훌륭한 아들은 어디서 데려오시려나.

◆지은이 남정일헌(南貞一軒): 1840(헌종6)∼1922(임정4) 때의 인물.
이 시는 가계(家系)의 단절(斷絶)을 근심하는 가족들의 비통한 심정을 읊은 작품으로, 구절마다 진한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모든 생명체는 본래 자신이 계속 존속되기를 바란다. 이것은 각 생명체가 가진 유전자의 본능이다. 그래서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을 통해 자신을 이어가려 한다. 이것은 인간 세계에서만 한정된 게 아니라, 살아 숨쉬는 모든 생명체들의 자연스런 본능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 세상에서 후손을 중시하는 것도 바로 이런 본능 때문이요, 양자를 들이는 문화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파생된 것이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자손은 부모를 봉양함은 물론, 조상과의 일체임을 확인하는 제사 의식을 이어가는 역할도 담당한다. 따라서 후사가 없다면 노후는 쓸쓸하고, 또 그 가계(家系)는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것으로 여겼다. 실재로 그 가계는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친자식이 없다면 양자라도 들여 가계를 잇고자 했던 것이다.

남들은 다 남편도 있고 아들도 있어 가문을 튼튼히 이어가는데, 지은이만 남편도 아들도 모두 없어 가계를 이을 수 없는 형편에 처하게 되었다. 가족이라야 홀 시아버지 혼자 남았는데, 병마저 들었으니 거동도 자유롭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참으로 가문의 역사는 위태하고 처참한 지경에 와 있는 것이다. 시아버지는 몸이 병들었지만 가문을 이을 양자를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났던 것이다. 길 떠나는 순간 시아버지의 심정을 지은이는 “병든 시아버님 길 떠나면서 얼마나 우셨을까.”라 했다. 이 속에 시아버지의 처참한 심정,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지은이의 안타까움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가문을 잇고자 하는 가족들의 노력은 실로 눈물겹다 하겠다.
이 시는 와해될 위기에 처한 가정사를 애절하게 읊어낸 작품이다.

◆한시 이야기: 왜란(倭亂)과 호란(胡亂) 이후부터 숙종(肅宗) 때까지는 시단(詩壇)이 황폐해졌다. 이때 남용익(南龍翼)·김득신(金得臣)·홍만종(洪萬宗) 등은 전대의 작품들을 정리·비평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17세기 후반에 와서는 김창협(金昌協) 형제의 주도 하에 진시운동(眞詩運動)이 일어났다. 그들은 사실적인 모습을 읊기를 주장하고 천기(天機)를 중시했는데, 이는 당풍(唐風)에서 송시(宋詩)로의 복귀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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