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憂親老(우친노) -
五夜寒風吹曉燈(오야한풍취효등)한데,
西庭月影樹層層(서정월영수층층)을.
光陰不惜人生老(광음불석인생노)하니,
孝子心如履薄氷(효자심여리박빙)을.

- 어버이의 늙음을 근심하다 -
오경(五更)의 찬바람 새벽 등잔에 부는데,
서쪽 정원의 달빛 아래엔 층층이 서있는 나무.
세월은 멈추지 않아 인생이 늙어 가니,
효자의 심정은 살얼음을 밟는 듯 하네.

◆지은이 김청한당(金淸閑堂): 1853(철종4)∼1890(고종27) 때의 인물.
부모에 대한 사랑을 전경과 조화시켜 생동감 있게 드러낸 작품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참된 사랑은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다. 자식은 부모의 몸을 나눔 받은 존재이므로, 부모와 자식은 실상 하나인 것이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간의 윤리를 ‘천륜(天倫)’이라 하는 것이다. 즉 부모와 자식 간에는 자연적이고 절대적인 윤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여타의 인간 관계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또 거기에서 요청되는 윤리는 인위적인 것이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의 천륜처럼 자연성과 절대성을 가질 수 없다. 그러니 부모가 자식간에 서로 사랑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참된 감정이며 합리성을 가진 윤리인 것이다.

지금 세상엔 부모와 자식 간의 천연적인 관계를 인위적으로 맺은 관계보다 더 소홀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는 무엇이 참된 것인지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기인한 행위이다. 옛사람들이라 해서 무조건 옳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부모와 자식이 서로 사랑하고 위해주는 옛사람들의 행위는 반드시 본 받아야 할 것이다.

이 시의 지은이 또한 부모를 생각하는 효심이 간절했고, 그 심정을 시를 통해 잘 들어내고 있다. 새벽의 찬바람이 등잔에 스산하게 불 때,서쪽 정원으로 지는 달은 나무 위를 쓸쓸히 비추고 있는 것이다. 주위의 풍광은 이처럼 근심을 자아내게 하는데, 이때 노부모를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애잔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살얼음을 밟는 듯 하네’라 하여 부모를 생각하는 애절한 심정을 급소를 누르듯 드러낸 것이다.
이 시는 심원하면서도 감동적으로 효심을 드러냄으로써 감상자에게 부모에 대한 생각을 강하게 환기시켜 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한시 이야기: 18세기에는 악부풍(樂府風)의 시를 지은 기속시인(紀俗詩人)들이 등장했는데, 신유한(申維翰)·최성대(崔成大) 등이 있다. 또한 김창협(金昌協)의 맥을 이은 중인신분의 위항시인(委巷詩人)들이 등장했는데, 조수삼(趙秀三)이 그 대표자이다. 그리고 정약용(丁若鏞))·이가환(李家煥) 등의 경세가(經世家)들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다. 

述懷(술회) -
如夢靑樓二十秋(여몽청루이십추)는
催絃急管水爭流(최현급관수쟁류)를.
詩人莫道嬋姸劍(시인막도선연검)하라.
割盡剛腸未割愁(할진강장미할수)를.

- 회포를 드러내다 -
꿈같은 기녀 생활 이십 년은
가야금 타고 피리 부는 사이 물처럼 흘렀네.
시인(詩人)은 좋은 칼을 말하지 말라.
모진 창자 다 베어도 내 근심은 베지 못하리.

◆지은이 강지재당(姜只在堂): 생몰 연대는 미상. 김해(金海)의 기녀.
이 시는 기녀 생활의 슬픔을 예리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옛날의 기녀는 어릴 적부터 불행하다. 서녀이거나, 기녀의 딸이거나, 가난한 집안의 딸이거나 등등의 슬픈 처지를 만났을 때 기녀가 된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기방(妓房)에서 가무(歌舞)와 시화(詩畵) 및 기방의 예법 등을 배우느라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한다. 이 과정을 마치면 손님을 맞으러 나가는데, 손님이란 대부분이 쾌락을 누리고자 온 사람들로 기녀를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이가 드물다. 그야말로 놀이의 도구로만 볼 뿐이니, 자존심에 많은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다.

놀러온 남정네 중에는 간혹 마음에 드는 이도 있지만, 순정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쩌다 서로 사랑을 나눌 사람을 만나도 무정히 떠나버리는 경우도 있다. 물론 드물지만 사랑하는 이의 소실로 들어가게 되면 노년을 홀로 쓸쓸히 보내는 것보다는 났지만, 이 또한 남편을 마음대로 만나고 사랑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닌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시밭길 인생이 바로 기녀의 팔자인 것이다.

기방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청춘의 이십 년이 유수(流水)처럼 흘러 가버렸다. 지은이는 그 사이 무수한 상처를 받으며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시인(詩人)은 고운 칼을 말하지 말라/ 모진 창자 다 베어도 내 근심은 베지 못하리.”고 읊은 것이다. 근심은 형상이 없지만, 그 밀도는 금강석보다 더 높은 것이다. 그래서 베고자 해도 벨 수가 없는 것이다. 그 근심은 죽어서도 다 풀릴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지은이는 이 시에서 기녀의 힘들 삶을 ‘내 근심은 베지 못하리라’는 구절을 통해 비수처럼 날카롭게 전달하고 있다.

◆한시 이야기: 18세기 후반에 와서는 박지원(朴趾源)과 후사가(後四家), 즉 이덕무(李德懋)·유득공(柳得恭)·박제가(朴齊家)·이서구(李書九)가 유명한데, 그들은 천기(天機) 숭상하던 김창협(金昌協) 형제의 시풍을 이었다 하겠다. 또한 조선 말기 시의 한 특징으로 뜻이 넓고 깊은 개념의 시를 썼는데, 신위(申緯)와 김정희(金正喜) 등이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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