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에 30도를 오르내리는 뜨거운 열기는 숨을 헐떡이게 할 정도다. 도심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숲의 그늘을 찾아 산이나 계곡으로 찾아든다. 야외 현장수업도 가급적이면 그런 장소를 찾아 나간다.

오늘은 만인산 자연휴양림을 찾았다. 오전에는 그런대로 한가한 편이었는데, 정오를 넘어서며 주차장에 차량들이 줄을 잇는다. 만인산을 오르는 길은 경사가 심해 그냥 지나치지만 주변으로 나 있는 산책길은 평평한 숲길로 시민들의 호응이 좋아 많이 찾는 곳이다.

오전 오후 수업을 이곳에서 하니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다. 높은 나무가 양쪽으로 늘어서서 하늘을 덮고 그늘을 만들어주니 더 할 나위가 없다. 길 중턱에 만들어진 쉼터는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의 놀이터다. 마른 나무 부딪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아마도 윷놀이를 하는 것 같다. 그늘 아래 삼삼오오 마주 앉아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여유 있는 말년도 보기 좋지만 그런 장소를 제공해 주는 이곳 자연이야말로 더없이 소중한 친구인 셈이다.

바깥 세상은 무슨 이상한 호흡기증후군이 퍼져 감염자가 매일 늘어나고 있다고 언론마다 소란스럽다. 그냥 태연한 척하려 하지만 내심은 좌불안석(坐不安席)이다. 이웃에서도 환자가 발생했다느니 소문이 나면 바깥을 나가기도 걱정스럽다고 수강생들이 중언부언(重言復言)이다. 그러면서 이곳까지 야외현장수업을 찾아오신 수강생들께서는 용감하신 거라고 넉두리를 한다.

숲길을 느긋하게 거닐며 시원한 공기를 깊게 들여 마신다. 나무가 빽빽하고 이파리가 무성하니 그늘의 연속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나뭇잎을 통과한 햇빛은 풀이 죽어 연한 녹색으로 다가온다. 향긋한 숲내음은 마음까지 맑게 해 준다. 이제야 세상을 바로 보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 편안해진다. 길옆으로 늘어선 산사나무에 열매가 다글다글하다. 내심 반가워 올해는 산사(山査) 열매를 좀 따겠구나 싶어 유념해 두기로 했다.

산사나무 아래 경사진 곳에 족도리풀이 보인다. 드문드문 떨어져 있고 이파리를 서로 맞댄 모습이 그 풀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잎자루를 세워 마주 보는 모습이 마치 내게 인사를 하는 듯하다. 이 풀의 꽃모양이 옛날 전통 혼례(婚禮) 때 부녀자들이 머리에 쓰는 족두리를 닮았다 하여 족도리풀이라 부른다고 한다.

족도리풀은 쥐방울덩굴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키는 10∼20센티 정도로 숲 속에서 자란다. 뿌리줄기는 옆으로 비스듬히 뻗으며, 잎은 두 장씩 나와 마주나는 것처럼 보인다. 꽃은 4∼5월에 잎 사이에서 나온 짧은 꽃줄기 끝에 흑자색으로 피며 꽃잎은 없다. 꽃이 낙엽 속에 묻히거나 잎 아래에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열매는 장과(漿果)로 씨가 20개 정도 들어 있다. <대전시 여성가족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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