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서 <대전장애인인권포럼 대표>

안승서
대전장애인인권 포럼 대표

젓가락은 우리들의 밥상에 필수적으로 오르는 생활도구다. 가늘고 길쭉한 막대나 쇠로 만들어진 젓가락은 결코 귀하게 여기지 않는 물건이지만 우리의 생활문화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숟가락은 없어도 젓가락 없이는 식사를 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젓가락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도구가 됐다.

몇 해 전, 세계적 이목을 집중시켰던 줄기세포 그 중심에 젓가락이 있었다. 그렇게 중요한 젓가락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해 놓고 또 쉽사리 우리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양은냄비가 쉽게 뜨거워지고 쉽게 식듯이 젓가락 사건은 쉽게 사라진 듯하다. 우리 민족성이라고도 하는 냄비 근성. 그러나 우리는 버리고 있는 줄기세포 사건은 선진국에서는 잡고 놓지 않고 꾸준히 연구를 하고 있으니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모 대기업에서 신입사원 연수과정 중에 젓가락 시험이 있었단다. 젓가락으로 깻잎, 콩자반을 옮기는 문제였는데 겨우 3%만이 통과됐고 집중적인 훈련을 받고서야 기대치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너무도 간단한 시험 아닌가? 평소에 관심만 있고 생활에 충실했다면 누구나 통과할 수 있는 젓가락질. 그 젓가락질 시험을 3%밖에 통과하지 못했다는 건 평소 우리 생활, 젓가락 문화가 얼마나 허술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요즈음 어린 아이가 젓가락질을 배울 무렵 우리의 현실을 돌이켜보자. 어머니가 모두 다 해준다. 밥도 먹여주고 반찬도 먹여준다. 그것을 어쩌면 어머니들이 너무도 바빠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빨리 먹여서 놀이방에,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출근해야 하니까, 빨리 학원 차에 태워야 하니까…. 그런데 이런 행동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며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젓가락질에 우리의 문화, 우리의 교육이 내포돼 있는 것을 왜 모를까?

지금은 우리 곁에서 멀어져 갔지만 대가족제도 하에서 철저하게 지켜지던 것이 밥상머리 교육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수저를 들고 나서야 아버지 형, 그리고 우리들의 차례가 왔었다. 어린아이들이 젓가락으로 멀리 있는 반찬을 먹을라 치면 할아버지의 ‘이놈!’ 소리와 함께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디서 버르장머리 없이 어른 앞으로 젓가락이 오느냐는 것이었다. 젓가락질이 서툴거나 왼손으로 할 때도 꾸지람이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밥상 앞에서의 교육은 긴장 또 긴장이었다.

요즈음 아침에 중·고교 정문을 가 보자. 내 자식을 편하게 등교시키기 위한 자가용 행렬.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조금은 걸어도 괜찮을 학교길이 자가용 전시장과도 같다. 또 주차 위반, 신호 위반은 아무렇지 않게 한다. 이렇게 먹여주고 입혀주고 법질서까지 지키지 않으면서 자가용에 태워 학교 보낸 내 자식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을까?

내 자신과 내 자식을 한 번 냉철하게 관찰해 보자. 내 사랑하는 자식이 세상을 잘 살아가려면 어떻게 가르쳐야 하고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를 생각해보자. 이렇게 자란 내 자녀가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겠는가? 남을 배려는 하겠는가? 어른을 공경할 수 있겠는가?

무엇이 먼 훗날 내 자녀의 장래를 위한 일인지 곰곰이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젓가락 문화, 밥상머리 교육이 올바로 이뤄질 때 우리나라의 앞날은 기대할 만 할 것이다.

안승서 <대전장애인인권 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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