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주(이찬주춤자료관대표/춤평론가)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인물하면 세종대왕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세종은 1397년 4월 10일(양력 5월 15일) 태종과 원경왕후(元敬王后)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408년(태종 8)에 충녕군(忠寧君)에 책봉되었고, 1418년(태종 18)에 왕세자에 올라 같은 해 22세의 젊은 나이로 조선왕조 제4대 왕의 자리에 올랐다. 생전 세종이 쌓은 업적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며, 그가 정치·경제·국방·문화 등 다방면에 훌륭한 치적을 쌓아 조선 왕조의 기틀을 튼튼히 한 것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세종은 조선왕조 건국의 도덕적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해 다양한 궁중춤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 중 하나가 오늘 소개할 ‘몽금척무(夢金尺舞)’이다. 몽금척무는 ‘몽금척(夢金尺)’이라는 설화를 바탕으로 하는데, ‘태조실록’ 권4에 그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몽금척’은 정도전이 태조 이성계를 위해 지어 올린 글로 “주상 전하께서 꿈에 신(神)이 내려와 금(金)으로 된 자(尺)를 주면서 국가를 정제(整齊)하라… 전하(殿下)는… 백성의 희망이 붙게 되었다. 우리의 마음을 헤아려서 꼭 맞은 그 증험은 천명(天命)을 받은 상서(祥瑞)입니다. 천명(天命)을 받은 것은 반드시 인민들의 기대에서 나왔을 것이니 대의(大義)를 바루어야 될 것입니다.” 라고 글이 담겨있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 정벌 후 조선이 세운 것은 하늘의 뜻이며, 그가 왕의 자리에 오른 것 역시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는 뜻이다.

세종은 이러한 태조의 공덕을 찬양한 악장(樂章)에 자신이 지은 ‘유황사(維皇詞)’의 한 구절을 더해 춤으로 재탄생시킨다. 그 구절은 ‘천장금척수명지상(天腸金尺受明之祥)’로, 금으로 만든 자(尺)라는 뜻의 금척(金尺)에 구절을 새겨 넣고, 비단으로 만든 족자에 유황사를 기록하여, 무동으로 하여금 그것을 들고 추게 하여 몽금척을 ‘몽금척무’로 탈바꿈 시켰다.

몽금척무의 구성인원은 총 17인으로, 가운데에서 각기 금척, 족자, 황개의 의무를 든 3인을 세워두고, 그 양쪽으로 죽간자를 든 2인과, 이들을 중심으로 좌우 6인을 줄 맞추어 세운다. 그리고 수령지곡(壽寧之曲)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준비를 마친다.

먼저 죽간자 2인이 앞으로 나와 “봉정부지영이(奉貞符之靈異-정고한 부록의 영이함을 받들어서)…”라고 구호한다. 다음에 박을 치면 좌우 6인이 양팔을 펼치고 무릎을 굴신하며 2인씩 3줄로 선다. 그리고 금척을 든 이가 “몽금척 수명지상야(夢金尺受命之祥也-금척을 꿈꾼 것은 천명을 받으려는)….”라고 구호 한다. 다음으로 양쪽에 선 12인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살포시 인사하면, 6줄로 선 12인의 춤꾼이 악절(樂節)에 맞추어 “유황감지공명혜(惟皇鑑之孔明兮-하늘의 살피심이 크게 밝아)…”를 노래하며 양팔을 들어 양손을 하늘로 펼친 뒤, 다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가 양팔을 펼친다.

그들은 원을 크게 만들어 돌면서 세 차례 오른팔과 왼팔을 번갈아 들고, 다시 양팔을 펼치며 악절에 맞추어 “성인유작만물개도(聖人有作萬物皆覩-태조께서 일어나시니 만물이 다 보게되고)…”를 구호하고, 노래가 끝나갈 때는 제자리로 돌아간다. 마지막으로 죽간자 2인이 “악기주어구성수용헌어만세(樂旣奏於九成壽庸獻於萬歲-이미 구성의 악을 연주하였고 곧 만세의 장수를 드리도다)”의 구호를 외치면, 모든 춤꾼들이 양팔을 펼치며 어르다가, 두 손을 모아 뒤로 물러나며 점차 춤을 끝맺는다.

현재 ‘몽금척무’는 구성인원 17인외에 인인장(引人仗)·용선(龍扇)·봉선(鳳扇)·정절(旌節)등의 의물을 든 20여명 가량이 둘러싸 장대한 위엄을 더하기도 한다. 초기에는 세종조 무동들이 중단상(中單裳)과 감색 상의를 입어 경의를 표하고, 금과 은으로 채색된 부용과 모란을 꽂아 부용관을 씌우고 신발은 주로 흑화를 신었다. 
 

‘몽금척무’는 고려의 뒤를 이어 탄생한 조선왕조의 정당성을 합리화한 의식절차의 하나로, 조선왕조 500년 동안 크고 작은 나라의 경사를 축하하며, 궁중연회에서 가장 많이 추어진 춤으로 알려져 있다. 생전 항상 강조했던 천심과 민심이 하나임을, ‘몽금척무’를 통해 알리려 했던 세종의 마음이 전해지는 춤이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