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호 상무이사·총괄국장

최근 군대 생활을 다룬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진짜 사나이’ 여군특집에 출연했던 한 여가수가 출산보다 군대생활이 더 힘들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그녀는 "아이는 잠시 아프면… 사실 잊는다. 그러니까 또 낳는 것 아니냐? 그런데 군대는 정말 죽을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아기 낳을래? 군대 한 번 더 갈래?"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기를 낳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30여 년 전 2월 논산훈련소에 입대해 28연대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 해는 유난히 눈이 많았다. 자고나면 연병장이 눈밭으로 변해 있었다. 아침마다 눈을 치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훈련시작도 전에 기진맥진해 있기가 일쑤였다. 요즘도 그렇게 눈을 치우는지 모르겠으나 그때는 그랬다. 훈련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훈련 시작 후 3일간은 화장실 갈 일이 없었다. 나흘째 되던 날 화장실을 갔는데 배설물이 염소 그것과 흡사했다.

얼마 전 최전방 철책에서 지뢰가 폭발해 아까운 청춘들이 희생됐고 대구에서는 훈련 중 수류탄이 터져 사상자가 발생했다. 군대는 살상무기를 다루기 때문에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지곤 한다. 그리고 전역 후에도 상처를 안고 평생을 살아간다. 또 군복무 중인 자식이나 가족이 있으면 항상 살얼음 위를 걷는 심정으로 불안한 나날을 보낸다. 군부대 사고 뉴스만 나오면 가슴이 철렁한다. 과거에 비해 많이 근절됐다고는 하지만 혈기 왕성한 남자들이 집단생활을 하다 보니 폭력 등 가혹행위도 일어나 부모들은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그런데 최근 국정감사에서 고위 공직자의 자녀들이 국적포기를 통해 병역을 면제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고위 공직자 중에는 국회의원, 대학총장, 산림청장, 국·도립대 교수,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헌법재판소 이사관, 한국환경공단 이사장 등이 포함돼 있다. 게다가 일부 자녀는 국적을 포기해 병역을 면제받고도 버젓이 국내에 들어와 취업한 것으로 드러나 병역기피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은 자녀가 일찍 해외로 유학을 떠나 현지에서 공부하고 취업했으며 자녀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군색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으나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대한민국에서 살려면 군대를 다녀오라는 말이 있을 정도 군대문제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병역 문제만 나오면 민감하게 반응하고 쌍심지를 켜는 것은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비롯된 애증의 산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20여 개월로 줄긴 했지만 병역의 의무는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누구에게나 매섭고 어려운 시기다. 청춘이라는 가장 좋은 시절을 군대라는 정형화된 그리고 통제된 상태에서 절제하며 살아야만 했던 상황에 대한 힘든 기억은 되돌리고 싶지 않은 과거다. 군대서 다치거나 유명을 달리한 가족이나 친지가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군대 보낸 아들을 가슴에 묻고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부모와 그 형제자매들의 아픔은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 없고 대신할 수도 없다.

거의 모든 국민이 군대에 대한 어렵고 힘든 기억을 하나쯤 안고 살아가다 보니 병역 기피자를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얼마 전 전쟁직전의 상황에서 전역을 연기하고 의연하게 대처했던 사병에 대해 찬사가 쏟아졌다. 병역의무가 없는데도 해외에서 입국해 자진 입대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고 위기상황에서 스스로 전역을 연기하는 병사도 있다. 그래서 든든하다. 어제가 국군의 날 이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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