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본부 부국장 김도운

세상에 서열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갑자기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우리는 순서를 매기고 우열을 가리는 서열문화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잘 살펴보면 생활 주변에 서열화가 고착돼 있는 분야는 너무도 많다. 가장 고착화돼 있는 분야 중 하나가 대학을 서열화시키는 것이다. 대학의 서열화는 대개 입시 문턱이 높은 순으로 정해지는 것 같다.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 국숭세단 광명상가 한서삼’이란 이 마법 주문 같은 말은 서울 소재 대학들을 한 줄로 세워 학교 이름의 첫 글자를 연결해 만들어진 것이다. 부정하는 이들도 많지만 이 서열은 실상 대두분의 사람들 인식 속에 굳어져 있다.

서열화돼 있는 것이 어디 대학뿐인가. 기업도 매출 규모에 따라 서열이 정해져 있다. 기업의 경우, 업종별로 별도의 서열이 또 구축돼 있다. 병원도 서열화돼 있고, 언론매체를 서열화하는 것도 일반화돼 있다. 심지어는 종교도 신도 수에 따라 서열화돼 있다. 서열 문화는 우리 생활 속에 너무도 깊이 뿌리 내리고 있어 대개의 사람들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서열을 받아들인다. 자신이 서열화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지만 별다른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그대로 순응한다. 암암리에 서열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국제 스포츠 종합경기대회의 경우, 별도의 종합 순위를 매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메달집계라는 황당한 방법으로 참가국의 순위를 매기고 한 줄로 나열한다. 금메달 1개에는 은메달 10개, 100개보다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개인전이든 단체전이든 괘념치 않고 금메달 수만 계산하는 셈법이다. 이러한 메달집계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인정하지 않는 방식이다. IOC는 종목별 시상을 하지만 국가별 종합순위는 순위를 매기지도 않고 시상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고집스럽게 메달을 집계하고 순위를 매긴다.

뭔가 순위를 매겨 고착화시키는 것은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지만 우리 사회는 병적으로 서열을 좋아한다. 자신이 그 서열 문화의 희생양이 되는 줄 알면서도 그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한다.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이는 자본주의 문화가 만들어낸 무한 경쟁의 병폐 중 하나이다. 뭐든지 경쟁해야 하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상대와 싸워 이겨 딛고 올라가야 하는 행태는 분명 자승자박이다.

서열이 없는 사회를 생각해보았다. 참으로 엉뚱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하지만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서열이 없어진다면 학생들이 가장 반길 것이다. 내가 보기에 학생들이 싫어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성적과 순위로 사람을 서열화 하는 일이다. 평가를 하되 성적이나 순위를 발표하지 않고, 상급 학교도 서열이 없어 집에서 가까운 학교가 가장 좋은 학교라는 생각이 일반화된다면 그 세상은 얼마나 평화로울까. 애써 고교평준화를 만들어 놓고도 특목고니 자사고니 마이스터고니 등등을 만들어 굳이 서열화로 회귀하는 우리사회의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서열 없는 사회가 의욕도 없고 발전도 없는 맹맹한 사회라고 단정하는 경쟁주의자들은 상하와 우열을 나누고 서열을 매기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고 주장한다. 서열이 없어지면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 모든 인간이 나태해지고 무력해진다고 단언한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경쟁도 없고, 서열도 없는 평온한 사회에서 살아보고 싶다. 스스로가 얽어맨 경쟁과 서열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내면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회를 마음 깊이 동경하는 것이 그렇게 어리석기만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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