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선 (주)오렌지나인 대표

‘시내에서 보자!’ 친구의 전화를 끊고 나니 딸아이가 묻는다. ‘아빠, 시내가 어디야?’ 우리 딸이 시내를 모르지는 않을 터, 그럼에도 딸아이는 아빠가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아주 모호하며 특정할 수 없는 장소 ‘시내’에서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신기해 했다.

지역마다 사람들마다, 또 시대에 따라 ‘시내’라는 공간은 각기 다를 수 있지만 도시를 관통하는 교통의 중심이며 상업이 번창하고 오락과 유흥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이 공간은 한 세대가 도시의 삶 속에서 같은 기억을 공유하면서 특정한 장소를 상징화한 일반명사가 아닌가 싶다. 나와 친구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시내에서 만나자’는 암묵적인 약속의 장소는 약속의 목적에 따라 은행동이 되었다가, 어느 때는 대흥동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시내를 나간다는 것은 새로운 음악을 만나는 것이요, 영화, 패션은 물론 친구들을 만나 다양한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내’는 과거 그곳을 통해 쌓았던 다양한 추억들이 공유되면서 또 다른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매력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도심도 변하면서 시내가 누렸던 영화는 더 이상 은행동과 대흥동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친구들과 최신의 음악을 들었던 음악 감상실도, 단체관람 영화를 보며, 놀던 장소들이 사라지면서 쇠락한 도심을 살려야 한다는 원도심 활성화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방안들을 내놓기는 했지만 쉽지만은 않은 듯하다. 지금까지 원도심에서 행한 거리를 새롭게 꾸미고, 거리공연을 하고, 길을 막고 차 없는 거리를 통해서는 활성화의 갈증만 더하는 꼴이 아닌가 싶다.

도시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시내’라는 공간에는 그들만이 느끼고 공유되는 기억의 조각들이 있다.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활성화 행사로는 사라진 공간의 기억들을 되살릴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일회성 유혹에 불과할 수 있다. 우리 앞에 닥친 원도심의 문제는 단순한 상권의 붕괴가 아닌 기억의 단절이고, 문제해결도 단절된 기억을 어떻게 잇느냐에서 시작했어야 한다. 우선적으로 기억을 되살려 사람을 모이게 하는 힘은 도시의 역사와 함께한 건축물들을 찾아내고 보존하는 것이다. 굳이 역사적인 건축물이 아니더라도 시민의 삶과 함께한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을 듯싶다. 도시의 역사와 함께한 건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스토리텔링도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역으로 이어지는 원도심을 걷다보면 감춰진 근대적 풍경을 다시 살려낼 건물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도심을 재생한다는 명목으로 새로운 것을 덧입히기보다 세월 따라 건물에 입혀진 건물의 외형을 지워내 대전다운 원도심의 향수를 불러내야 하는 것이다. 시민들이 원도심에서 찾고 싶은 것은 도심의 높은 빌딩이나 화려한 네온조명이 아닌 세월의 흔적이 내려앉은 지난 기억을 찾고 싶은 것이다. 원도심에서의 낡음은 더 이상 지우거나 버려야 할 고물이 아닌 보물이라는 인식을 우리스스로가 할 때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우리의 원도심은 단순히 과거의 기억만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도시대전이 발전하는데 중요한 정체성을 확인할 출발점이요, 문화자산으로서의 상품성도 충분한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두고 원도심을 재생하느냐에 따라 원도심을 회복할 수도 있고 아니면 여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도시가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시내’ 원도심이 대전만의, 대전다운 공간으로 다시 기억될 수 있도록 원도심의 가치를 읽어내는 대전시민의 안목과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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