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 목사<양지사랑의교회>

내가 남을 판단하는 것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내 스스로 입술을 지키고 판단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판단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은 절대 피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판단과 심판은 완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가 하나님의 판단을 받는 기준은 바로 내가 사람을 판단한 그 기준이다(롬2:1-3). 고로 우리가 남을 판단하는 그 기준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하나님께 판단 받지 앟으려고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분명 잘못에 대해 바른 길을 가도록 먼저 깨달은 사람이 가르쳐야 한다. 여기서 우리에게 성경의 진리가 필요하다. 성경은 곳곳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주신다. 판단, 정죄, 권면, 충고, 가르침 등등 이런 단어는 동의어로서 인간 내면에서부터 비롯된, 즉 동기가 중요한언어들이다.

어떤 때에 판단이고, 정죄이며, 어떤 때에 충고와 가르침인가?

구체적으로 구분해 보면 첫째로는 사랑으로 하면 권면이 되지만 증오와 미움으로 하면 판단이 된다.

외형적으로 같아 보일지라도 내면의 동기가 사랑으로 하는가? 미움으로 하는가? 아무리 천사의 말을 하고 하늘언어를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 사랑 없는 판단과 말은 진실성이 결여된 말이기에 하나님께서 그 판단과 정죄에 대하여 댓가를 찾으신다.

둘째로는 생명을 살리는 마음으로 판단하면 그것은 권면이 된다. 죽이기 위해서, 남을 깎아 내리기 위해서 판단하고 정죄하면 그것은 아무리 미사어구를 써도 나 역시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길이 없다.

셋째로 회개에 이르는 열매를 맺도록 판단하여 가르치면 그것은 권면이 되고 충고가 된다. 사실 잘못한 상대방이 스스로 깨닫고 회개하기란 그리 녹녹하지 않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회개하기 까지 얼마나 오래 참아주며 인내해야 할까? 권면은 한 번 하고 지나가면 절대 회개의 열매까지 맺히지 않는다. 그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오래 참음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대방과 같은 죄를 지은 상태에서 남을 판단하면 그것은 정죄가 되지만 그 죄에서 떠난 사람이 상대방을 판단하면 그것은 권면이 된다. 동일한 상태에서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적어도 그 지적하는 죄목에서 벗어난 사람이 가르칠 때에야 소위 말발이 서는 것이고 그 흠 없는 권위 앞에 올바른 자아성찰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형제 눈 속에 티를 보기 전에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부터 빼라는 진리를 잊지 말자.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점은 판단은 언제나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를 판단해 보라. 당장 상대방의 반격이 시작될 것이다. '당신이 뭔데?' '잘 나면 얼마나 잘 났다고?'

'넌 실수하지 않느냐?' 등, 이럴 때도 계속 권면해야 하는가? 대답은 '그렇다.' 이때 매우 조심해야 할것은 권면의 제1된 목적, '상대방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절대 상대방을 아프게 하거나, 상처주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여 겸손함과 예의바름과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이런 진심이라면 그 마음이 통할 것이다.

그리고 성령님께 간절히 구해야 한다. 중심과 마음을 살피시는 성령님께서 당신의 진심을 상대방에게 알게 하신다. 순간적으로는 오해할지라도 진실은 반드시 통하는 법이다. 혹 내가 권면 받는 입장이라면 겸허한 마음으로 들을 귀 있는 자세를 취함이 좋고, 권면하는 자라면 사랑으로 함이 좋다. 이럴 때 서로에게 유익이 되어 인격성숙의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라는 속담처럼 이웃의 잘못에 대해 혹 오해할까 그냥 넘어가지 말고 사랑과 진실함으로 서로 붙들어주고 일으켜 주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아가자.

지금 우리 사회에 무엇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모두가 손가락질 할 때 우리는 손을 모아 기도하면 허물을 덮어주고, 함께 아파하며, 일어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일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곳곳이 이렇게 되기만 한다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아름다워질까? "너의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요8:7)는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귓가에 쟁쟁히 메아리치고 있다. 우리가 진정 들어야 할 것은 던지는 돌이 아니라 가슴으로 얼싸안고 품어주는 사랑과 용서이다.

이 일에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앞장설 것을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