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불위의 지략⑤

“잠시만 기다리옵소서.”

그제야 화양부인은 돌아앉아 자신의 천의 같은 저고리를 허공에 벗어 던졌다. 이어 몸을 가리고 있던 새하얀 명주치마도 걷어내고 다소곳이 돌아앉았다. 양손으로 가슴을 가린 채였다.

“소첩 부끄럽사옵니다. 다른 곳을 보시옵소서.”

안국군은 그런 화양부인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고개를 돌리고 황촛불에 흔들리는 방문을 너머다 보았다.

화양부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얇은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참으로 맑은 속살이 달빛에 빛났다. 안국군은 그녀가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기까지의 기다림이 여삼추 같았다.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대군마마. 소첩은 왜 하루 종일 대군마마 생각밖에 나지 않는 것이오니까?”

화양부인은 매끄러운 몸으로 대군을 휘감으며 속삭였다.

“그랬소. 나 또한 그러하오이다.”

대군은 가쁜 호흡으로 말했다.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너무나 목말라 샘물을 들이켜고 싶었다. 정부인인 화양부인과의 밤이 하루 이틀이 아닌데 어찌하여 갈수록 갈증이 더하는 것은 왤까. 생각해 보았지만 도리어 머리가 텅 빌 뿐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또 여느 날과 달랐다.

대군은 참지 못해 산야를 짓뭉갰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샘물을 찾아 나섰다. 벌거숭이 민둥산을 더듬고 지나 아래로 아래로 숲을 찾았다. 벌판을 지날 때는 가쁜 숨을 참을 수 없어 여러 차례 허공에 토해냈다. 그리고는 곧장 계곡 속에 묻혀 있던 샘물에 얼굴을 들이밀고 갈증을 채웠다. 하지만 샘물은 먹을수록 더욱 더 갈증을 보챘다. 양 손으로 샘물을 헤집으며 더욱 깊이 들이켰지만 여전히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부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친 바람을 몰아가는 계곡을 따라 기운이 솟구친 곳을 품었지만 가슴만 답답했다. 세찬 기운이 자신의 가슴을 뻥 뚫어주길 갈망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도록 모든 것을 태워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한 줌의 재도 남지 않을 만큼 불살라 주길 애태웠다.

바로 그때였다. 넘친 기운이 밀려드는 듯하드니 온몸의 뜨거운 피가 솟구쳤다. 심장에서 솟구친 선혈이 얼굴로 손가락 끝으로 발가락까지 퍼져가며 전율에 휩싸이게 했다. 또 다른 경험이었다. 아니 색다른 경험이었다. 멀리 말을 몰아온 것처럼 가슴이 터질 듯이 숨 가빴다.

대군은 여세를 몰아 계곡 전체를 초토화시킬 기세였다. 하지만 그것이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안장에 올라 버티고 섰던 두 다리가 부들거렸다. 뻣뻣하게 굳어가는 것이 쥐가 날 지경이었다. 온몸이 돌덩이처럼 굳어오는 것도 심상치 않았다. 엄지발고락에 힘을 주며 안간힘을 쏟았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깊은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할 뿐이었다.

“안되겠소. 그만.”

대군은 초조한 나머지 사지를 부들거리며 허공에 대고 포효하듯 토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부인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그러다 다소 조급하게 걸음을 재촉했다. 느린 듯하면 빠르고 빨라진 듯하면 느리기를 반복했다. 감을 잡지 못할 만큼 불규칙적이었다. 부인은 오랜 기간 등산을 준비했으므로 자신의 체력을 적절하게 안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뜨거운 열기 탓에 가쁜 숨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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