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살이 60년…변치않는 고향 사랑"

1940년 연기군 양화리(현 세종시 세종동)에서 태어난 춘천시나눔봉사단 임기수 단장은 한국타이어 춘천대리점(주)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그야 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역사의 산증인이다.

◆굴곡 많았던 사회 초년생

16살 때 이웃집 할머니를 따라 춘천으로 올라간 임 대표는 60여년을 춘천에서 살았다.

그 곳에서 맨 먼저 한 일은 버스 정류장에서 펑크 난 타이어를 때우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곳 생활이 여의치 않아 관용차 조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것도 역시 녹녹치 않아 뛰쳐나와 3개월간 군용차 부속을 사다 다시 파는 노점상도 해봤다.

꽤 쏠쏠했다. 그러면서 간도 커져 노름에 손을 댔고, 하룻밤에 모든 돈을 날렸다.

전전긍긍하다 다시 타이어 수리점에 취직해 많은 돈을 벌었지만 일하면서 알게 된 친구가 갈 곳이없다고 해서 숙식을 같이하다 모은 돈을 모두 도둑맞으며 다시 빈털터리가 되기도 했다.

옆에 은행이 있어도 이용할 줄을 몰라 주인에게 돈을 맡겨두었다가 주인이 어려워지면서 월급을 몽땅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다. 군 제대 후 동업자한테 또 한 번의 배신을 당하고 침을 뱉고 춘천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와 농사를 지으려 했지만 역시 녹녹치 않았다.

임 대표는 1970년 침을 뱉고 떠났던 춘천으로 다시 돌아왔다. 타이어가게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지인의 눈에 들면서 타이어 가게를 맡아서 운영하게 됐다.

열심히 산 덕분에 1974년 친구의 동업 제의로 덤프트럭도 한 대 구입해 타이어 가게와 함께 운수업도 겸해서 했다. 당시 건설 경기가 붐을 일면서 많은 돈을 벌게 되고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그것도 한 순간이었다. 1980년 덤프트럭 사업을 하면서 도시가스 사업에 손을 댄 것이 화근이었다.

생면부지의 사업이었기에 결국 부도를 맞으며 손을 놔야 했다. 그러면서 다시 타이어수리공으로 인생을 길을 걷게 됐다.

◆최고의 행운은 ‘한국타이어’와의 만남

1980년 부도가 나기 2년전인 1978년 지인과 동업으로 한국타이어와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당시 담보가 없어 전전긍긍해야 했고, 쉬운 길은 아니었다. 성실 하나로 살아온 터라 한국타이어에서도 그 뜻을 알고 지원을 시작할 무렵인 1980년 병행해하던 도시가스 공사업이 부도를 맞으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한국타이어는 그를 놓지 않았다. 당시 엄청 큰 돈인 1억 1000만원을 매월 이자 없이 1000만원씩 갚으라면서 차용도 해줬다. 그 이유는 임 대표의 정직함이 통했기 때문이었다고 자평했다.

임 대표와 한국타이어의 인연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임 대표는 “1980년 그 어려운 시절 부도를 해결하고 돈이 없어서 지금의 사옥을 사지 못해 안달을 할 때 한국타이어에서 건물 구입비 전액(3650만원)을 5년 상환으로 빌려주었고, 그 덕분에 열심히 일을 해 돈을 벌었고, 회사가 도와준 것처럼 돈을 벌면 누군가를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자기와 한국타이어와의 특별한 관계도 자랑 삼아 털어놨다.

임 대표는 “본인이 회사의 뜻을 빌어 춘천의 불우 이웃을 돕기 시작한 것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한국타이어도 1995년부터 매년 춘천지역 고등학생 4명에게 장학금(40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또 “아내가 89년 뇌경색으로 병석에 누워 14년간 식물인간으로 투병할 때 병원비에 보태라고 얼마간 제품 값을 깍아 준적도 있다”고 자랑삼아 얘기하면서 “정말 인간적인 회사”라고 극찬을 했다.

임 대표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한국타이어 춘천대리점 개점일인 10월30일마다 지역의 어려운 학생에게 38년간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38년간 1000여명의 학생들에게 혜택을 주었고 장학금액도 7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한국타이어 역시 임 대표의 회사 사랑에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지난 2011년 회사 사보에 임 대표의 회사 사랑을 소개하면서 후배 직원들에게 기부문화를 전파했고, 임 대표에게 2012년 ‘한국타이어 명예의 전당 스타당’을 수여하기도 했다.

올 1월에는 목표 달성 판매점에 주는 큰상과 30년 근속 특별 공로패도 수여했다.

임 대표는“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게 해 준 한국타이어 본사에 늘 감사하며 한국타이어를 만난 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상 이었다”며 회사 애찬론을 폈다.

◆춘천지역 ‘기부 및 봉사의 대부’

임 대표는 춘천에서 ‘기부왕’, ‘봉사왕’이란 애칭이 따라 다니는 인물이다.

그는 춘천시복지위원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2013년 강원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 춘천시나눔봉사단이 발대식을 갖고 출범 이후 봉사단장도 맡고 있다. 많은 봉사활동을 통해 춘천지역의 등불이 되고 있다.

지난 2013년 12월에는 강원도에서 9번째로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2년 만에 기부금 1억 원을 모두 납부한 임 대표는 지난 1월 아들과 사위 등 가족이 모두 참여하는 ‘가족 아너소사이어티’에 재가입 했다. 강원도에서 최초다. 2020년까지 다시 1억 원의 기부금을 납부하게 된다.

임 대표는 국제로타리클럽 활동도 왕성하게 하고 있다. 지난 해 국제로타리클럽이 전 세계에서 매년 50명 가량의 회원을 뽑아 시상하는 ‘초아의 봉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시상금으로 받은 상금 300만 원을 저소득 가정자녀를 위해 기탁했다.

장학사업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40여 년간 각종 요로를 통해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 외에도 장학재단에도 많은 금액을 기부하고 있다. 在춘천충청향우회 장학재단을 만들어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다.

지난 2010년에는 춘천고와 강원대에 매년 1000만원씩을 50년 동안 장학금으로 내겠다는 약속을 했다. 금액은 5억 원이다.

임 대표는 인순이의 해밀학교 돕기에도 솔선하고 있다. 다문화 청소년을 위해 만들고 있는 해밀학교가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선뜻 1000만원을 기부하고 주위 친지들을 독려해 몇 천 만원의 후원금을 마련해 전달하기도 했다.

세종시 일미농산 오영철 회장이 해밀학교에 후원금 1억 원을 전달하게 된 계기도 임 대표의 역할이 컷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임 대표 아들 임재홍(45) 씨는 “아버지가 평소 즐겁게 선행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식으로서 많이 배운다. 언제나 말보다는 행동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며 “남은 여생도 나눔과 봉사로 행복하게 사시길 바라고 아버지를 통해 조그만 힘을 보탤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영원한 ‘고향사랑과 모교사랑’

임 대표는 지난 해 2월 60여년 만에 모교인 연양초 졸업식장을 찾아 발전기금과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2100만 원을 기탁했다.

임 대표는 당시 100만 원을 졸업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전달하고, 1000만 원을 학교발전기금으로 전달했다. 그리고 추가로 1000만 원을 세종시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 매년 100만원씩 10년 동안 연양초 학생들에게 장학금이 지급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임 대표는 “1995년도 연기군 양화리에 있던 연세초등학교에 장학금 1000만원을 기탁했는데 세종시가 생기면서 폐교돼 당시냈던 1000만원을 돌려받아 고민해 오던 중 연양초가 2014년 행복도시에 다시 개교해 장학금으로 전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20여년간 고향사랑도 실천하고 있다. 지난 해 세종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방문, ‘고향사랑성금’으로 300만 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2002년에는 500만 원을 쾌척, 고향인 마을 입구에 ‘가학동 유래비’를 세우기도 했다.

지금도 그 유래비는 고향을 지키고 있다.

◆명예고교 졸업장에 이어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 받다

임 대표의 이같은 선행이 전해지면서 학계에서도 호평을 하고 있다.

춘천고등학교는 지난 2012년 2월 임 대표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또 2012년 5월 11일 강원대학교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연양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였던 임 대표에게 명예고교 졸업장과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가 부여된 것을 놓고 주변에선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이 놀라고 땅이 움직임) 한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당시 강원대 권영중 총장은 축사를 통해 “임기수 회장은 정치인도 아니고 재벌도 아닌 필부입니다. 그늘진 곳, 굶주린 이웃을 찾아가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수 십년간 봉사를 해온 것이야 말로 자본주의의 가장 위대한 정신입니다.그의 선행이 드디어 하늘을 감동 시켰습니다”라며 명예 경영학 박사학위를 수여하게 된 동기를 표현했다.

팔순 가까운 나이에도 작업장 떠나지 않아

아직도 임 대표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은 주위를 감동시키고 있다.

기자와 첫 만남이 이뤄지는 날 임 대표는 기름때가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그의 사무실(한국타이어 춘천판매점)에서 맞아주었다.

인하대학교 기계과를 졸업한 넷째 아들 임재홍씨가 이어 받아 회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도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손님을 맞는 것은 임 대표의 몫이라고 했다.

임 대표는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는 어릴 때 얻은 교훈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 중국집에서 배운 교훈이 평생 살아온 철학되었다”고 회고했다.

◆남은 여생도 지금처럼..

임 대표는 ‘굴렁쇠 허공에 구름 한 점 남기고’란 자서전을 통해 그간 살아온 삶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그는 “불우이웃의 희망을 찾는 등불이 되기를 희망한다”며 판매 수익 전액을 불우이웃에게 기부한다고 했다. 그의 선행이 전해지면서 초판이 모두 판매되고 지난 2월 재판했다.

그는 “혼자서 잘 살면 무엇합니까. 있는 자가 없는 곳에 등불을 밝혀주면 빛이 납니다. 주위에 어두운 곳이 있으면 그렇게 등불을 밝혀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고 앞으로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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