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초, 장양왕이 되다②

아홉 살이 된 영정은 기대보다 튼실하게 자라나 있었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당당한 풍모와 굵은 통뼈, 부리부리한 눈망울, 딱 벌어진 어깨….

기골이 벌써 예사롭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아들이란 것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어떻게 변해 있을까를 곱씹을 때마다 떠올렸던 그 형상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성숙하고 단단했다.

장양왕은 그를 보는 순간 덥석 끌어안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어린 자식을 뒤로하고 도망 왔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지났다. 얼마나 보고 싶고 그리웠던 자식이었든가.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늘 뇌리를 맴돌았는데 드디어 그를 만난 것이다.

장양왕은 영정을 품에 안고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 손을 풀며 말했다.

“네가 과인의 아들 영정이 맞느냐?”

장양왕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앉아 그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눈 속에 자신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눈가에는 눈물이 번들거렸다.

“그러하옵니다. 아바마마. 아바마마의 자식 영정이 맞사옵니다.”

영정은 장양왕 앞에 넙죽 절을 올리고 무릎을 꿇었다.

순간 장양왕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대처능력이 얼마나 있는지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물었다.

“그것을 무슨 수로 증명할꼬?”

하지만 장양왕의 주문은 아이에게 시험거리가 되지 못했다. 영정은 준비를 한 듯 또록또록한 목소리로 다부지게 말했다.

“아바마마께옵서 황급히 이 나라로 돌아오실 때 어머님께 남긴 벽옥조각을 기억하시옵니까? 그것은 조부이신 효문대왕께서 아바마마께 남기신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그것이 제게 있사옵니다. 소자는 지금까지 한시도 그것을 품에서 놓아본 적이 없기에 그것으로 자식 됨을 증명할까 하옵니다.”

어린 영정은 영특할 만큼 비범한 눈초리로 자신의 품속에 지니고 있던 벽옥조각을 꺼내 자초에게 내밀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자초는 흐뭇한 표정으로 벽옥조각을 맞추어본 뒤 그를 다시 와락 당겨 안았다. 가슴이 뭉클했다. 선왕께서 자신을 간택할 때 남긴 신표가 자신의 자식을 확인하는 신표가 될 줄이야. 장양왕은 다시 한 번 지난날을 상기하며 눈물을 훔쳤다.

“이제 고생은 끝이 났단다. 과인이 너를 그토록 고생시킨 것이 가슴 아픈데 어찌 더 많은 고생을 용납하겠느냐. 지금부터 어미와 함께 행복하게 이 진나라에서 살자꾸나.”

“감사하옵니다. 아바마마.”

영정은 다시 한 번 장양왕에게 삼배를 올렸다.

이를 지켜본 조희도 흐뭇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조나라에서 9년의 세월을 모지도록 질기게 살았던 날들이 한순간에 바람처럼 날아가 버렸다. 봄눈이 녹아내리듯 그렇게 희미하게 눈앞을 스쳤다. 독수공방의 날을 보내면서 얼마나 많은 욕설과 분노에 치를 떨었던가. 하지만 그 또한 봄바람에 날아가는 꽃잎에 불과했다. 도리어 그 날들이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그날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는 것처럼, 그날들의 인과로 오늘이 온 것처럼 착각마저 들었다. 고생 끝에 영화가 온다는 말이 조희 자신을 두고 한 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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