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연출로 호평을 받았던 MBC TV '결혼계약'의 지난 24일 마지막회.

오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한부 환자의 절절한 멜로를 그리던 와중에 갑자기 수 초간 상품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선글라스 케이스가 화면에 클로즈업됐다.

주인공 이서진과 유이가 간만에,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놀이공원 나들이를 한다며 들떠 있는 아침 식탁에 이서진이 선글라스를 마련했다고 들고온다. 카메라는 케이스를 수 초간 비추고, 이서진은 선글라스를 꺼내서 써보며 유이에게 "어때?"라고 묻는다.

누가 봐도 명백한 간접광고(PPL)의 한장면. 이 정도면 용인 가능한 수준일까, 아니면 몰입을 난데없이 방해하는 수준일까.

방송 프로그램, 특히 드라마 속 PPL이 갈수록 규모화, 노골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화제 속에 종영한 '태양의 후예'도 PPL로 비난의 포화를 맞았다.

제작사들은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PPL이 불가피하다고 말하고, 시청자는 PPL이 이야기의 흐름과 몰입을 방해하는 게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성토한다.

 

◇ "치솟는 제작비에 PPL은 필요악"

'태양의 후예'의 제작사 NEW는 한창 방송 중이던 지난달 21일 보도자료를 내고 "100% 사전제작으로 제품의 마케팅 시점과 드라마 방송 시점의 시차가 있고, 기존의 드라마와 달리 위급상황과 규모가 큰 재난 및 액션 장면의 비중이 크다는 제약에도 '태양의 후예'는 최근 드라마 중 최고가인 30억 원의 PPL 매출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편의 드라마가 PPL로 30억 원을 벌었다는 것은 최고 수준이다. 대부분의 드라마는 PPL로 10억 원을 벌기도 어렵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NEW가 자랑한 PPL 매출은 결과적으로는 여론의 뭇매로 이어졌다. 과도한 PPL을 드라마에 소화하느라 이야기가 산으로 가고, 불쾌감마저 주는 장면이 이어지다 급기야는 '태양의 후예'가 'PPL의 후예'라는 오명을 얻으며 용두사미로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오는 4일 '태양의 후예'의 과도한 PPL에 대해 심의를 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이나 방심위의 심의가 드라마 PPL에 유의미한 제동을 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치솟는 제작비를 메우는 데 PPL이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고, 제작자로서는 이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달 시작하는 한 드라마의 제작자는 "PPL을 욕하는데 PPL이 없으면 드라마를 만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출연료, 작가료 등은 치솟았는데 방송사가 제작비로 주는 돈은 실제 제작비의 반도 안되는 상황"이라면서 "좀더 좋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제작비를 들이는 과정에서 PPL은 필요악이다. 시청자들도 그런 면에서 이해를 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PPL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고 관련 기관의 심의와 제재가 이어지고 있지만, 제작자들은 이에 아랑곳없이 더 많은 PPL을 따내기 위해 불철주야 뛰고 있다.

◇ "PPL을 위한 드라마로 변질"

PPL은 2010년 허용된 이래 꾸준히 양적으로 성장세다. 방송 광고 시장이 계속 나빠지는 것과 반비례해 PPL 시장은 성장세라는 점은 광고주들이 프로그램 앞뒤에 붙이는 광고보다 극중 상품이 노출되는 경우의 광고효과가 더 좋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드라마 속 등장한 화장품이나 의류, 음식이 불티나게 팔려나간 사례는 심심치 않게 확인되고 있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이 입고 나온 망토의 경우는 1천만 원에 가까운 고가였음에도 품절됐다.

방송 PPL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두 곳에서 감독한다.

방통위는 PPL의 형식적 규제를 하는데, PPL은 방송 시간의 5% 내에서 해야하며 한 브랜드당 노출 시간이 30초를 넘으면 안되고, 상품이 화면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면 안된다.

이러한 PPL의 형식을 지켰다고 해도 내용상으로 문제가 있으면 방심위의 규제를 받는다.

  

방심위는 맥락상 부자연스러운 노출, 과도한 노출 등을 자체 모니터링과 민원,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걸러내 심의하고, 그 결과에 따라 행정지도부터 과징금까지 징계를 내린다.

지금껏 케이블 프로그램은 PPL이 문제가 돼 2천만원까지 과징금이 부과된 사례가 있었지만 지상파 프로그램 중에서는 과징금이 부과된 적은 아직 없다고 방심위는 밝혔다.

방심위 관계자는 1일 "PPL이 문제가 돼 적발되는 건수는 예년이나 지금이나 별로 차이가 없다. 다만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는 게 문제"라며 "부자연스러운 PPL 노출에 대한 민원이 늘어나고 있다. 시청자가 불쾌감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시청률 20%를 넘긴 SBS TV '용팔이'에서는 주원과 김태희가 한껏 무드를 잡은 멜로신에서 뜬금없이 주원이 스마트폰을 꺼내 방을 구하는 앱을 한동안 살펴봤다. 이 장면은 시청자의 맹비난을 받았다.

'태양의 후예'에서는 송중기와 송혜교가 텐트 안에서 다정하게 무드를 잡고 있는 장면에서 송혜교가 스마트폰으로 호텔예약 앱을 한동안 살펴봤다. 역시 실소를 자아내는 장면이었다.

이쯤되면 'PPL을 위한 장면'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시청자로서는 남녀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되다가 산통이 와장창 깨진다.

SBS '용팔이'
 

◇ 자연스러운 PPL에 대한 고민

사극은 그 특성상 PPL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데, 송중기가 유시진을 연기하기 전 2010년 출연했던 KBS 2TV '성균관 스캔들'에서 연기한 구용하가 그 어려운 걸 해냈다.

극중 구용하가 즐겨 먹었던 육포가 바로 PPL이었던 것. '성균관 스캔들'도 지금의 '태양의 후예'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는데, 당시에는 이 육포가 PPL이라는 점이 드러나지도 않았고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자연스러웠다는 것이다.

 

2014년 역시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tvN '미생'도 자연스러운 PPL 연출로 회자되는 작품이다. 많은 사무용품과 먹거리가 PPL로 등장했지만 눈에 거슬리지 않고 극의 내용과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지난해 방송된 KBS 2TV '프로듀사'는 노골적인 PPL이 이야기의 흐름을 마디마디 끊었다는 혹평을 받았다. '별에서 온 그대'로 대박을 친 김수현의 후속작답게 '프로듀사'에는 PPL 제안이 넘쳐났고, 제작진은 행복한 비명 속에서 최대한 많은 PPL을 소화하려고 안간힘을 쓰다 결국 부작용을 낳았다.

방송 관계자들은 "제작진으로서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PPL을 녹이기 위해 고민을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작가와의 충돌도 빈번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의 PPL이 중국에서도 비난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제작진은 자연스러운 PPL에 대해 지금보다 더 깊이 고민해야할 것이다.

  

◇ 한류 장기화·극대화 위해선 저작권 보호해야

'태양의 후예'는 방송 중에는 'PPL의 후예'라는 비난을 받더니, 종영 후에는 드라마 이미지 불법 도용 사례로 몸살을 앓고 있다. 드라마가 인기를 끄니까 드라마 이미지를 불법적으로 제품 광고에 사용하는 사례가 수백 건 적발되고 있는 것.

여기에 드라마의 공식 협찬사였던 액세서리업체는 최근 주인공 송혜교로부터 초상권 침해로 고소를 당했다. 해당 업체를 고소한 것은 송혜교 측이지만, 업체가 계약을 맺은 상대는 '태양의 후예'의 제작사다. 제작사와 업체가 맺은 PPL 계약에서 분쟁의 여지가 발생한 것이다.

  

'태양의 후예'의 제작사 NEW는 "해당 업체가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밝힐 것"이라며 "이참에 저작권, 초상권에 대한 보호 장치가 더 강화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방송가에서는 한류의 효과를 장기화,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저작권 보호를 강화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를 통해 제작자가 안정적으로 재원을 확보하고 수익을 낼 수 있다면 이야기를 방해하는 과도한 PPL은 자연스럽게 정리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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