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①

내관이 급히 내전에 있던 진왕을 찾았다. 그는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대왕마마, 급한 전갈이옵나이다.”

“무슨 급한 전갈이 있기에 이리 호들갑인고?”

내관이 머리를 조아리며 다급하게 말했다.

“상국께서 여씨춘추를 공포했다 하옵나이다.”

“뭐라 여씨춘추를 공포해? 소상히 고하렷다.”

진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상국께옵서 여씨춘추를 성문 위에 내걸고 현상금 1천 금을 내걸었다 하옵나이다.”

그랬다. 여불위는 여씨춘추를 진나라 수도 함양 성문 위에 내걸고 현상금으로 1천 금을 내걸었다. 그리고 제후들과 빈객들에게 알리는 방을 붙였다. 자신이 빈객들과 함께 만든 법령에 조금이라도 흠이 있다는 것을 밝혀내면 그곳에 응당한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의미였다.

“여씨춘추에서 한 글자를 더하거나 뺄 때마다 1천 금을 주겠다.”

성문을 오가는 사람들은 구름 떼처럼 몰려들어 여불위의 여씨춘추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현자들은 이런 모습을 보며 아무래도 무슨 변고가 일어날 수도 있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감히 누구도 나서서 글자를 빼거나 더하려 하지 않았다. 이는 여불위의 권세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진왕은 내관의 보고를 소상히 받고 용상을 손으로 내리쳤다. 안색이 수시로 변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편전을 오갔다. 법령을 왕인 자신에게 보고하지도 않고 임의로 공포했다는 것이 천인공노할 불충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긴 칼을 들고 뛰어가고 싶었다. 이어 여씨춘추와 관련된 모든 이들의 수급을 거두고 싶었다. 그래도 속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열이 머리로 치밀어 올랐다. 속이 부글거렸다. 속으로 삭였다. 다른 방도가 없었다. 와신상담하며 빌미를 찾아야 했다.

진왕은 솟구쳐 오르는 분노를 삭이기 위해 그날 밤도 술로 날을 새웠다. 물론 옆에는 궁녀 초란이 앉아 술을 따르고 있었다. 초란은 상국 여불위의 행위에 대해 분노하는 진왕의 표정을 살피며 그의 비위를 맞추었다. 때로 음기를 풍기며 애교를 떨기도 했고 속살을 내보이며 간사스러운 교성을 지르기도 했다. 배시시 웃기도 했고 긴 치마꼬리를 흔들며 살랑 춤을 추기도 했다. 그러면서 진왕의 분노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대왕마마. 노기를 푸시옵소서. 옥체를 보전해야 하옵니다.”

“…….”

하지만 진왕의 노기는 좀체 내려앉지 않았다. 한순간 초란의 애교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하다 이내 술잔을 거칠게 기울이며 연신 심호흡을 했다. 답답한 듯 앞섶을 풀어헤치고 술을 들이켰다. 술잔을 내전의 윗목으로 힘껏 던졌다. 요란하게 옥배가 산산조각이 났다. 초란은 기겁을 하며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진왕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그렇게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큰 손에 힘을 주며 이빨을 깨물었다.

“괘씸한 것들….”

진왕은 거친 숨을 연거푸 몰아쉬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상국 여불위가 여씨춘추를 공포하던 날 진왕은 한잠도 이루지 못했다. 하얗게 날밤을 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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