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애사건①

아버지 장앙왕이 왕위에 오른 것도 여불위의 도움이었다. 군신들이 진왕 자신의 왕위 계승에 문제를 제기할 때 그것을 막아주고 옹립시킨 사람도 여불위였다. 또 숱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가로막으며 모든 것을 해결해준 사람도 그였다. 그를 숙청하는 일은 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겨놓고 기다리기만 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날도 함양궁 대전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내관이 궁녀 초란을 들여보냈지만 진왕이 일찌감치 내쳤다. 그리고 혼자 앉아 있었다.

텅 빈 대전과 매콤한 그을음을 내며 타오르는 고래 기름 등잔. 눅눅한 바람. 문밖에서 잔잔하게 들려오는 악사들의 음악소리. 그것마저 귀에 거슬렸다.

영정은 내관을 불러 악사를 모두 물리게 하고 혼자 잔을 기울였다.

날로 더 높아가는 중부 여불위의 오만함에 속이 뒤틀림을 느낄 때마다 독주를 가득 따라 들이켰다.

한편으로 선왕을 사지에서 구해주고 어머니를 태후가 되도록 만들어준 공로를 인정해야만 하는 현실과 왕권을 농단하고 있는 여불위의 오만함을 놓고 고심했다.

진왕 영정이 취기를 토하며 용상에 비스듬히 앉아 있을 때였다. 내관 조고가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다가왔다.

“대왕마마. 밤이 늦었사옵니다. 내전으로 드심이 마땅하신 줄 아옵니다.”

“벌써 시각이 야심했단 말인가?”

영정은 자세를 바로잡으며 내관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네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시각이 야심한 것은 분명하구나. 그래 요즈음 궁 안은 조용하더냐?”

영정은 내관 조고를 통해 궁내사정을 파악했으므로 자연스럽게 물었다.

내관들은 궁에서 발생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수시로 왕에게 고해왔던 터라 소소한 이야기까지 빠짐없이 털어놓곤 했다. 다만 여불위와 태후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보고하는 것을 철칙으로 알고 있었다. 만약 내관이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고했다고 전해지면 그날로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이 달아났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영정은 그들의 소식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왕의 심기가 불편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낌으로 안 내관들은 더욱 입조심을 했다. 하지만 조고만은 달랐다. 조고는 여불위의 동향에 대해 낱낱이 고하고 있었다. 영정은 이점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조고를 시켜 궁내 사정을 파악하곤 했다.

“왜 말이 없느냐. 궁 안에 별다른 일이 없느냐고 물었느니라.”

“송구하옵니다. 입에 담기가 두려워…….”

내관 조고는 부르르 떨며 입을 열지 못했다.

“내게만 고하라 일렀지 않았느냐. 무슨 일이 있어도 네 신변은 내가 보호해주겠노라고 일렀지 않았느냐. 말해 보아라.”

조고는 목소리를 죽이고 대전을 둘러본 다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왕마마. 누가 들을까 두려워 조용히 말씀드려도 되겠나이까?”

“허허 거참, 누가 듣는단 말이냐. 그럼 조용히 내 귀에 대고 일러 보아라.”

내관은 취기가 풍기는 왕 가까이로 기어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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