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채사람 이사⑥

“아무렴. 내 어찌 그것까지야 당부드릴 수 있겠소. 다만 나를 찾으시면 여산 쪽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다시 길을 떠날 것이라고만 전해주시구려.”

이사는 상소를 위사에게 맡기고 발길을 돌려 터덜터덜 동쪽으로 향했다. 진나라에서 더 이상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동쪽에 있는 또 다른 나라로 들어가 뜻을 펼 욕심이었다.

한편 위사에게 전달된 상소는 여러 경로를 통해 진왕의 앞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진왕은 이사가 올린 상소를 내팽개쳤다. 그가 여불위의 식솔이었기에 그의 상소를 읽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며칠이 지난 다음 뒤늦게 그것을 펴들었다.

상소 내용은 진왕의 폐부를 찌르고 있었다.

“진나라의 옛 임금들은 널리 인재를 구하여 나라를 크게 일으켰습니다. 효공은 타국 사람 상앙을 써서 진나라의 기틀을 다졌고 혜왕은 장의의 헌책을 받아들여 삼천 땅을 거두고 파와 촉을 병합하였습니다. 소양왕은 범저(장록)를 얻어 제후들의 영토를 잠식하여 진나라를 넘볼 수 없도록 하였사옵니다.”

구구절절 틀림이 없었다. 진왕은 상소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그것을 읽어 내려갔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기에 태산이 되었으며 하해는 한줄기 시냇물도 마다하지 않아서 바다로 커졌습니다. 그런데 진나라는 자기 백성을 버려서 적국을 이롭게 하고 빈객을 물리쳐서 제후로 하여금 공을 세우게 하고 있습니다. 천하의 인재를 물리쳐서 그들로 하여금 동쪽으로 발걸음을 돌려 감히 진나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타국에서 온 빈객을 모조리 추방하는 것은 적국을 이롭게 하고 백성의 수를 덜어내 적국에게 보태주는 것이옵니다. 어찌 이와 같은 형국을 올바르다 하겠나이까.

바라옵건대 일전에 대왕마마께옵서 내리신 하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리고 많은 빈객들을 맞아들여 그들로 하여금 진나라에 충성을 다하도록 하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대왕마마의 천하통일 대업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옵니다.”

진왕은 읽던 상소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내관을 불렀다. 그리고는 곧바로 내관 조고에게 말했다.

“서둘러 이사를 찾아오너라. 늦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찾아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예. 알겠나이다. 대왕마마.”

조고는 즉답을 하고 조당을 나와 성문 쪽으로 군사를 보내며 그를 찾아오도록 명했다.

한편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이사는 함양성에서 하루 이틀을 머물다 기별이 없자 짐을 챙겼다. 그리고는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위나라를 거쳐 한나라를 지나 자신의 조국인 초나라 땅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물론 가는 길에 관직에 나아갈 기회가 있는지를 탐하고 그리 된다면 어디서든 일을 해볼 요량이었다.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웠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