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동구 직동 찬샘마을, 대청호오백리길 2구간

 

길 따라 대청호반에 펼쳐진 파노라마는 벅찬 감동이었다. 대전 도심에서 살짝 벗어나 고개 하나 넘었을 뿐인데 그곳에선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난다. 손을 덜 탄 깨끗한 자연이 살아 숨 쉰다. 미지의 세계를 처음 발견한 것처럼 호기심을 자극하고 설렘을 선사하는 그곳, 대청호. 그곳에서 다시 새로움과 신선함을 찾아 발걸음을 뗀다.

ㄴ[대청호오백리길 2구간 유람기와 트레킹 경로] 찬샘마을길 : 백제눈물의 수묵화

 [대청호 시즌1 기사보기]

#. 두메산골 정겨운 찬샘마을

대전시 동구 직동 찬샘마을. 이곳은 두메산골 오지 중의 오지였다. 지금이야 대전역에서 60번 버스 한 번 타면 금세 다다를 수 있는 곳이 됐지만 대청댐이 조성되기 전까진 산중에 꼭꼭 숨어있는 마을이었다. 변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처음 들어와 터를 일군 마을, 그 마을이 지금은 농촌체험관광마을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됐다. 다 대청호가 바꿔놓은 변화다.

 

직동의 옛 지명은 핏골이다. 지명의 유래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에 맞서기 위해 백제와 신라가 의기투합한 나제동맹이 깨진 뒤 두 나라의 갈등관계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지속되는 전쟁 속에서 병사들이 흘린 피가 산골짜기를 가득 메웠다고 전해진다. 계족산성을 비롯해 금강을 사이에 두고 산성이 집중적으로 배치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찬샘마을엔 웃핏골, 아래핏골이 있는데 웃핏골은 대청댐이 조성되면서 수몰됐고 아래핏골만 남았다.

시간이 지나 핏골이란 지명이 마을 이미지를 해친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은 이름을 새로 지었다. 그게 바로 찬샘마을이다. 이 이름 또한 마을의 특징을 반영한 것인데 예부터 이 마을 우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찬물이 마르지 않고 항상 차 있었다고 한다. ‘차가운 물이 차 있다’ 해서 찬샘이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지만 여전히 이 마을엔 주민 삶의 생명줄이었던 그 우물터가 남아 있다.

이곳엔 현재 30가구가 오순도순 모여 있다. 이 중 27가구가 토착민 가구다. 여기서 120여 명이 산다. 여느 농촌마을과 마찬가지로 이곳 주민의 대다수는 노인이다. 60대 청년 네다섯 명이 마을 일을 꾸려나간다. 30∼40대도 몇 있지만 이들은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이곳에선 60대가 청년일꾼이다. 지금의 찬샘마을을 일궈낸 것도 모두 이들이다.

 

 #. 연간 3만 명이 찾는 체험 명소

대청호를 배후로 자리 잡은 찬샘마을(홈페이지 http://chansaem.com/xe/home)은 대도시 근교에서 만날 수 있는 농촌체험마을이다. 광역시 단위에서 농촌체험마을 타이틀을 처음 얻은 것도 바로 이곳이다. 대전에서 차로 30∼40분이면 도달할 수 있어 학생 체험학습의 장으로 인기가 많다.

찬샘마을이 체험학습 명소가 된 건 2008년 현대식 건물로 말끔히 지어진 체험교육장이 문을 열면서다. 100∼120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과 학습장, 식당 등이 갖춰져 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태양광발전시설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 마을의 전기를 책임지는 이 시설이 찬샘마을의 상징이다.

찬샘마을엔 연간 2만∼3만 명의 체험객이 발을 들인다. 하루에 970명이 찾은 적도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운용되는 체험 프로그램은 셀 수 없이 많다. 너무 많아 ‘찬샘마을 체험 프로그램은 몇 개다’라고 콕 집어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봄·가을 소풍 프로그램, 식문화체험, 생태체험, 공예체험, 패키지체험, 수학여행 프로그램 등 아예 카테고리를 만들어 체험 프로그램을 운용한다. 7월엔 토마토·옥수수·복숭아·포도 따서 음식 만들기, 고구마 캐기, 물놀이, 손수건 천연염색, 토끼 먹이주기, 미꾸라지·우렁 잡기, 경운기타기, 곤충체험 등이 유치원·어린이집 아이들과 초·중·고 학생들을 위해 준비돼 있고 나전칠기, 도자기 만들기 등 성인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체험 프로그램 진행은 대부분 마을 주민들의 몫이다. 음식솜씨 좋고 손 기술 좋은 할매·할배들이 아이들의 체험을 돕는다. 한 가지 귀찮은 게 있다면 체험학습에 쓸 농작물들을 밤새 지켜내야 하는 거다. 요즘 고구마 캐기는 빠지지 않는 체험 가운데 하나인데 고구마밭을 밤새 지키는 일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팔십이 넘은 노인들도 원두막에 이부자리 펴 놓고 밤새 꽹과리를 쳐대야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로부터 체험에 쓸 고구마를 지켜낼 수 있다.

 

#. 체험 뒤 맞이하는 힐링 샤워

찬샘마을 체험시설엔 숙박시설이 포함돼 있다. 대청호 오백리길 여행자에겐 체험과 힐링관광의 구심점으로 아주 유용한 공간이다. 노을 지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이내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바비큐 파티가 시작되고 이야기꽃이 핀다. 개구리의 합창이 성가실 수도 있지만 이내 귓가에 익숙한 멜로디로 다가온다. 밤이 무르익어 별이 빛나기 시작하면 풍등을 날리면서 소원을 빌 수 있는 이벤트도 준비돼 있다. 달이 차오르고 분주했던 찬샘마을의 하루도 이렇게 저물어 간다.

찬샘마을은 농촌체험마을로 유명하지만 진짜 숨은 매력은 따로 있다. 이 마을을 품은 대청호다. 아침에 일어나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호반길을 걸으면 몸도 마음도 자연스럽게 정화된다. 마을 뒤편으로 길(대청호 오백리길 2구간)을 잡으면 찬샘정이란 정자를 만난다. 정자에 앉아 바라보는 풍광도 좋지만 찬샘정에서 곧바로 오를 수 있는 등산로를 따라 노고산에 오르면 더 큰 감동을 만끽할 수 있다.

나뭇잎 사이로 흐르는 대청호는 천연 청량제가 된다. 약 30분 정도의 수고(?)에 비하면 얻는 게 더 많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노고산 조망 포인트에선 일출이 아름다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새해 일출 명소로 꼽히곤 했다. 조망 포인트에서 조금 더 가면 백제와 신라의 치열한 전투를 가늠할 수 있는 노고산성도 볼 수 있다.

찬샘마을 북쪽으로 이어진 성치산성길도 걷기에 좋다. 쉬엄쉬엄 걷다보면 작은 반도의 끝에 서게 되는데 이곳은 그야말로 무릉도원이다. 맑은 날에 가면 잘 그려진 한 폭의 수채화가 되고, 흐린 날엔 애잔한 수묵화가 된다. ‘대청호 전망좋은 곳’이란 푯말을 따라가면 된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 사진·영상=박동규·이기준·주홍철·차철호 기자

▶ 찬샘마을 주변에서 만나는 대청호 풍경 ... 

 

 

 자세한 사항은 대전교통센터(http://traffic.daejeon.go.kr/map/busInfo/searchRoute.do) 참고.


 

"규제 완화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휴식 주는 마을 됐으면"

[인터뷰] 변영배 찬샘마을 이장

찬샘마을이 농촌체험마을로 유명세를 타는 건 마을 주민들의 정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시골마을이 아니라 활기가 넘치는 마을을 만들어 가려는 공감대가 잘 형성됐다.

다 그렇지만 찬샘마을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변영배(59) 이장(대청동 8통장)이다. 대전에 있는 한 대기업에서 일하다 암 치료를 받고 퇴사한 뒤 10여 년 전 귀향했다. 모두가 친인척인 이웃과 함께 농촌체험마을을 일군 것도 변 이장이다. 기계공학과 출신답게 마을에선 ‘수리전문’으로 통한다.

“농촌체험마을이란 개념도 생소했던 때인데 평생 마을을 지키며 살았던 주민들이 도전을 해서 농촌체험마을 인증을 받았어요. 우여곡절도 많았고 처음엔 많이 서툴렀는데 주민들이 한마음으로 달려드니까 일이 되더라구요. 국비를 지원받아 2008년 대규모 체험시설을 완공하니까 그때부터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프로그램도 다양해지고.” 

어린 시절 같이 다슬기 잡고 물장구치던 동네 선후배들이 도시로 나갔다 하나 둘 귀향해 정착하면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마을 평균연령이 점점 낮아지는 거다. 50~60대 젊은이(?)들이 많아지면서 체험 프로그램 운영하는 일도 많이 수월해졌다. 아이디어를 내고 구체화시켜 나가는 일에도 더욱 속도가 붙고 있다. 지금은 손자·손녀까지 3대가 달라붙어 찬샘마을 체험 프로그램을 운용한다.

“평생 농사만 짓던 분들이 뭘 하겠어요. 농사만 짓고선 먹고 사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니까 뭔가 대책이 필요하겠더라구요. 그래서 체험마을을 만든 겁니다. 이 동네는 수자원 보호를 위해 개발행위가 엄격하게 제한돼 있어요. 그저 있는 그대로에서 사업을 해야 하니까 농촌체험마을이 딱이죠. 마을 어르신들도 크게 어렵지 않게 농촌체험하게 돕는 역할만 하니까 큰 부담이 없어요. 그저 갖고 있는 기술만 보여주면 되거든요. 마을 입구에 풍물놀이 조형물 보셨죠? 그것도 이 마을 이북 출신 할아버지가 직접 만든 거예요. 스티로폼을 다듬어서.” 

찬샘마을의 가장 큰 자랑은 역시 자연환경이다. 찬샘마을에 체험객이 오면 산에 올라 대청호 풍광을 감상하라고 변 이장은 항상 권유한다.

그러면서 변 이장은 시대 흐름에 맞게 대청호 주변지역에 대한 규제도 풀어줬으면 하는 바람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여기선 한 집에서 키울 수 있는 애완동물 수도 제한돼 있어요. 수자원 보호도 중요하겠지만 규제가 너무 많고 심해 농촌체험마을 운영도 제한적이라 힘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이곳을 찾는 분들도 불편한 게 많을 거예요. 대책 마련이 필요합니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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