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채사람 이사⑧

“과인은 열세 살 어린 나이에 등극했소. 그러다 보니 정사는 태후와 승상 여불위가 전담하고 과인은 어깨너머로 구경이나 하는 처지였소. 게다가 궁실에 불행한 일이 연이어도 힘을 쓸 수가 없었소.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소. 태후는 물러나고 여불위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소. 드디어 과인이 뜻을 펼 때가 된 것이오.”

진왕이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러자 이사가 진왕의 인물됨을 새롭게 느끼며 자신의 의중을 털어놓았다.

“대왕마마. 진나라는 힘이 넘치고 나머지 여섯 나라는 점점 쇠약해지고 있사옵니다. 이런 때 부지런히 천하를 도모하지 않는다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소?”

이사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우선 우리와 가까우면서도 힘이 약한 나라를 먼저 쳐야 합니다. 한나라가 그런 나라입니다. 한나라를 멸하면 다른 나라들은 지레 겁을 먹을 것이옵니다. 그때 어떤 나라를 칠 것인지는 판단해 볼 일이옵나이다.”

이사는 대담하게 말했다.

“한나라는 그대의 조국이 아니오.”

진왕은 그의 단호한 어투와 담대한 행동에 놀라 되물었다.

“그러하옵나이다. 한나라는 소인의 조국이옵나이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서라면 사사로운 정은 챙길 수 없는 것이옵니다. 천하가 통일된다면 어떤 나라가 제조국이 아닌 곳이 있겠습니까?”

이사의 대답은 간장이 시릴 만큼 서늘했다. 그의 옆에는 한기가 돌았다.

“좋소이다. 그럼 한나라를 먼저 치도록 합시다.”

진왕은 이사를 객경으로 삼아 모든 것을 의논키로 하고 군부의 수장인 태위를 불러 먼저 한나라 칠 준비를 하라고 극비리에 명을 내렸다. 군마가 움직이고 병졸들이 부산하게 뛰어다녔다. 장졸들의 회합이 많아지고 세간에 전란이 머지 않았다는 말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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