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와 한나라의 멸망⑦

“대왕마마. 대왕마마께옵서 그를 중용하자고 제안하셨을 때 뛸 듯이 기뻐할 신하가 저 말고 누가 있겠나이까. 하지만 그는 일찍이 대왕께옵서 자신의 책인 한비자를 탐독하셨으며 만나기를 고대한다는 정보를 듣고 이 땅에 들어 왔사옵나이다. 그런 그가 자기의 형제들을 내치고 우리나라에 도움을 주기 위해 들어왔다고 믿을 수 있겠나이까. 신은 그와 동문수학했으며 가장 절친한 사이임에도 대왕마마를 위해 진언을 드리는 것이오니 살펴주시옵소서.”

이사의 말을 듣고 있던 진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현명한 신하도 믿음이 없으면 곤란하지.”

진왕은 혼잣말을 하고 신하들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그 말에 공감하는 기색이었다.

“그럼 그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내쫓을까?”

진왕은 이사에게 물었다.

“대왕께서는 옛일을 상고하셔야 하옵니다. 위나라의 신릉군과 제나라의 맹상군도 우리나라에 와서 벼슬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돌아가 우리를 괴롭혔사옵니다. 한비자는 더욱이 총명하여 대왕의 뜻을 너무나 많이 알았사옵니다. 그런 자를 되돌려 보낸다면 크게 후환을 입을 것이옵니다.”

그럴 법한 이야기였다. 진왕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하는 것이 옳겠소?”

신하들의 모든 시선이 이사의 입에 집중됐다.

등용치도 말고 내쫓지도 말라면 과연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했다. 귀를 쫑긋이 세우고 그의 입에서 떨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들은 내심 이사라는 인물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반면 이사는 확실한 자신의 위치를 굳히는 계기라고 생각했다. 진왕에게는 친구를 버리면서까지 충성을 다하는 면모를 보이고 아울러 문무백관들에게는 자신이 얼마나 확실한 진나라의 신하인지를 각인시킬 기회였다.

사실 이사는 초나라 사람이기에 늘 다른 나라 사람이라는 딱지를 달고 다녔다. 진나라에서 6국 사람들을 폄하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외국인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여불위가 관직에서 물러났을 때 자신이 동시에 관직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 점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에 이를 만회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한비자가 찾아온 것이었다.

이사는 이 기회가 하늘이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사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왕마마. 차라리 죽여 버리시옵소서.”

“그를 죽여 없애라?”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래야 한나라가 고분고분해질 것이옵니다.”

소름이 오싹 돋고 간담이 서늘해지는 말이었다. 진왕은 국익을 위해 오랜 친구도 버리는 이사의 강직함이 믿음직스러웠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잔인함에 치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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