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마을 체험 혹은 오지 탐험

 

#1.  다무락집- 민박집 그 이상의.

"한지마당 앞이라고요? 아, 그럼 마을 쪽으로 내려 오세요. 도랑 왼편으로 아주머니 한 분 나와 계실 거예요."

출타 중이시라는 이장님과 통화를 끝낸 뒤 대청호팀이 하루 묵을 '우리집'을 만났다. 벌랏한지마을 다무락집.

"촌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지요?" 

서글서글하신 다무락집 어머니(할머니라 부르기엔 굉장히 젊어 보이셨다)께서 첫 인사를 건네신다. 밭에서 일하시다 우리 도착했다는 얘기에 서둘러 들어오셔서 일행 맞을 준비를 하셨다고.

기대 이상. 널찍하고 깨끗한 방과 취사시설이 퍽 마음에 들었고, 마당에 내걸린 뽀송뽀송한 이불처럼 산뜻한 첫 인상. 흡족한 일행은 짐을 풀고 준비한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그리고 마을 유람에 나섰다.

 

 

#2. 벌랏나루터 - 

한지체험으로 유명한 벌랏마을의 또다른 명소는 나루터다. 대청댐이 생기기 전 배를 타고 어부동 쪽으로 나갔던 곳이다. 작년 9월에 대청호오백리길 16구간 유람할 때 이 곳을 한 번 온 적이 있다. 그 땐 물이 없었다.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던 대청호는 이 곳까지 물을 밀어줄 여력이 없었다.

이 곳에 처음 온 (위 사진 속의 등 면적 넉넉한) 남자1이 말했다.

"정글 속에 있는 '물숲'에 온 것 같아. 저 물숲 끝에서 누군가 배를 타고 올 것 같아."

일행은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고, 기다림을 찍었다. 물에 비치는 하늘빛과 구름은 멋진 조연이었다. 남자3은 조용히 휘파람을 불었다.

 

- 너를 두고 간다는 아픈 다짐도 없이
남기고 가져 갈 것 없는 저 무욕의 땅을 찾아
가는 배야 가는 배야 언제 우리 다시 만날까
꾸밈없이 꾸밈없이 홀로 떠나 가는 배 …

 

 

 

#3. 터널 - 이장님이 힘주어 강조하던.

나루터에서 마을로 향하다보면 오른쪽에 긴 터널이 보인다. 넝쿨식물 터널. 호박과 수세미 등등 잎과 줄기로 이뤄진 터널.

"마을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터널도 있고…."

이장님이 마을에 대해 이야기 하실 때 강조한 그 터널이다. 하지만 아직은 좀 아쉽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지 식물들이 막 뻗어나가는 과정이었다. 가을에 오면 아주 근사한 산책로가 돼 있을 것 같다. 그래도 파란 하늘 지붕이 멋지다.

 

 

 

#4. 샘봉산 -

벌랏한지마을 하이라이트를 맞이할 시간이다. 며칠 전 어느 블로그에서 본 사진이 강렬했다. 샘봉산에 올라 마을과 대청호 쪽으로 찍은 사진. 산과 호수와 마을이 신비롭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 이거다. 우리의 목표는 이 구도. 신문 지면에 올릴 메인사진이 얼추 그려졌다.

멋진 풍광을 떠올리니 산행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무더운 날이었는데도 말이다. 자, 출발 -.

이장님의 안내를 받으며 산길 초입에 들어선다.

"요 앞의 넝쿨만 잘 헤치고 가면 그 다음부턴 별로 어렵지 않을겨."

낫 한 자루를 쥐어주시는 이장님. 낫 한 자루… .

그 낫을 손에 쥐는 순간부터였다. 인상적인 고행의 시작.

웬 넝쿨은 이리도 많은지, 가시나무는 왜 이리도 많은지... 찾기 힘든 등산로. 길 아닌 길을 만들어 갔다. 비오듯 쏟아지는 땀. 절반도 못 갔는데 준비한 물은 벌써 다 마셔 간다. 샘봉산을 너무 가볍게 봤나 보다.

헉헉 대며 올라간다. 그래, 이 정도 고생은 해야지 장쾌한 풍경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남자 1, 2, 3은 오르고 올랐다.

 

 

나무들 사이로 마을도 보이고, 호수도 보인다. 조금씩 조금씩 엿보듯 호수를 바라본다. 그때마다 엄습하는 꺼림칙한 예감.

- 우리가 원한 그 장관을 과연 볼 수 있을까. 나무들이 가릴 것 같은데.

 

드디어 정상. 샘봉산 461.9m 정상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반갑게 맞이한다. "해냈어." 남자1은 돗자리를 펴고 길게 누웠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것일까. 정상은 전망과는 거리가 멀었고, 주변을 돌아다녀도 조망지가 없었다.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게 다였다.

등산로 정비하고, 전망대 조성해 놓으면 대청호와 그 친구들을 넉넉하게 감상할 수 있는 환상적인 곳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이장님한테 들은 이야기 - "정부가 환경보호 이유로 나무 한 그루 못 자르게 하고 등산로도, 전망대도 못 만들게 해." 아쉽다 아쉬워.

정상 찍었으니 얼른 내려갑시다. 물통의 물은 떨어진 지 오래. 갈증과 피로감이 심했다. 우리가 원한 사진을 얻지 못한 탓에 허탈함도 컸다.

 

내려가는 길이 낯설다. 올라왔던 길이 아니었다. 올라왔던 길이 아니면 어때. 가다 보면 내려가겠지. 그러다 아쉬움을 조금 달랠 풍경을 만났다.

대청호와 회남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그나마 다행'이란 말을 되뇌인다.

 

 

 

#5. 별빛이 내린다, 샤랄랄라라라

시나브로 해는 떨어져 하산을 마쳤을 무렵 어둠이 잦아들고 있었다. 조금만 더 늦었어도 산속에서 어둠을 만났을 것이다. 안도하며 숙소로 향한다.

다무락집 어머니가 주신 특별한 된장찌개와 준비해간 밑반찬으로 늦은 저녁밥을 먹고, 밤 마실을 나간다. 마을은 고요함으로 덮였고 풀벌레 소리와 매미 소리가 마을을 채우고 있다.

다무락집 대문을 나서자마자 감탄사가 이어진다. 별빛이 내린다, 샤랄랄라라라. 가로등이 없는 곳으로 숨어든다. 별들이 쏟아진다, 샤샤샤.

 

김현식 노래를 흥얼거린다.

... 어둠은 당신의 숨소리처럼
가만히 다가와 나를 감싸고
별빛은 어둠을 뚫고 내려와
무거운 내 마음 투명하게 해 ...

당신은 그렇게도 멀리서
밤마다 내게 어둠을 내려주네
밤마다 내게 별빛을 보여주네. (어둠 그 별빛)

 

남자 2는 계속 시도한다. 별 사진 찍기. 아예 길에 누워서 밤하늘을 만난다. 하지만 별 사진은 녹록지가 않다. 연신 눌러 보지만 결과물은 검은 하늘이다. 아쉽지만 눈 속에, 마음 속에 별을 새겨놓고 고단했던 하루를 마무리 한다.

 

별 /안도현

별을 쳐다보면
가고 싶다

어두워야 빛나는
그 별에
셋방을 하나 얻고 싶다

 

 

 

#6. 두 번째 탐험 - 도전은 계속된다

대청호오백리길 시리즈를 하면서 많이 쓰는 말이 있다. '함께 가는 길은 늘 아름답다.' 

험한 길을 간다 해도 함께라면 늘 행복하고 벅차다. 또 한 차례 함께 가는 길을 간다. 첫째 날 샘봉산에서 사진 결과물이 마뜩지 않은 것을 안 이장님은 숨겨진 조망지라며 노트북 위성사진을 보여주셨다. 날씨 좋은 날엔 저 멀리 대전 식장산까지 보인다며. 그리고 샘봉산만큼 험하지 않음을 강조하셨다.

그래, 어쩌면 더 좋은 사진을 얻을 수도 있겠어. 남자2와 남자3은 기대를 품고 산행을 시작한다. 

이장님은 또 낫을 권하신다. 이번엔 "괜찮습니다" 사양.

순탄한 시작. 어제보다 기대가 커진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산길이 섹시하게 나 있었다. 룰루랄라 휘파람 불며 간다. 하지만 곧 휘파람 소리는 거친 숨소리로 바뀐다.

다시 시작된 넝쿨과의 싸움, 길 찾기 여정. 시간도 꽤 걸렸다. 

이장님과 같이 오신 어르신은 "나 같으면 20분이면 가지" 그러셨는데 웬걸 1시간 이상 산을 탔는데도 목표지점이 보이지 않는다. 오랜 기간 사람의 발길이 끊긴 터라 길이 이어지다 끊기길 반복한다. 

우거진 수풀이 살갗에 상처를 낸다. 정신없이 발길을 재촉해 산줄기 끝 낭떠러지에 멈췄다.

 

 

同行

동행은 동감이고 감동이다. 몸은 좀 힘들어도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가는 것은 행복이고 즐거움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동지애는 더 딴딴해진다. 대청호오백리길 유람을 다니면서 보는 근사한 풍광보다 더 감동적인 얻음은 동지애다.

 

나의 삶은 얼마나 진지하고 치열한가
오늘밤 퇴근길 거리에서 되돌아본다
이 세상에 태어나 노동자로 살아가며
한평생 떠나고 싶지 않은 동지들 앞에

불빛 속을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
땅과 눈물 속에 피어날 노동의 꿈을 위하여
마음이 고달플 때면 언제라도 웃음으로
나의 사랑과 믿음이 되는 동지들 앞에
나의 삶은 부끄럽지 않은지

-동지들 앞에 나의 삶은

 

#7. 갈무리

계획보다 산에 머문 시간이 길었던 남자2와 남자3은 부랴부랴 마을로 돌아왔고, 마지막 일정인 한지체험 취재까지 마쳤다. 돌아가야 할 시간. 방 정리를 하고 다무락집 대문을 나선다. 다무락집 어머니는 손을 흔들어 기약 없는 다음을 기약한다. 

/대청호오백리길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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