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라를 멸하다⑤

사신은 타는 목마름을 술로 대신하고 있었다. 연신 생침을 삼키며 계집들이 자신을 스쳐 지날 때마다 스멀거림을 느꼈다. 그것은 고통이었다. 눈앞으로 스쳐 지나는 선홍빛 열매와 달무리를 그냥 지켜만 봐야 한다는 것이 고문이었다.

물결처럼 파도치는 뽀얀 가슴들의 행렬과 끊어질 듯 잘록한 허리를 만져보지 못하고 눈으로만 푸른 솔밭을 감상해야 함이 더없는 괴로움이었다.

사신은 연신 몸을 꼬며 위 왕의 심기를 살폈다.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소?”

위 왕이 너스레를 떨며 물었다.

“아니오이다. 즐거운 밤이옵나이다.”

“그렇소이다. 너무나 오랜만에 즐겨보는 밤이외다. 그대가 오지 않았다면 과인은 오늘도 편치 못한 잠을 청했을 거외다. 고맙소이다. 이제 밤이 깊었으니 편히 쉬시는 것이 어떠하겠소?”

“황공하옵나이다. 그럼 이만 물러나 쉬도록 하겠나이다.”

사신은 정신을 가다듬고 연회장을 물러나 객관으로 향했다.

위나라에서 일은 예상보다 순조롭게 진행이 된 셈이었다. 사신은 객관에 당도하자 급히 파발을 진나라로 보내며 위나라와의 친교가 성공리에 매듭지어졌음을 왕전 장군과 조정에 알리도록 했다. 자신의 임무는 끝난 셈이었다.

사신은 그제야 급작스레 취기가 몰려옴을 느끼며 침소에 들었다.

관모를 벗어 벽에 걸고 거추장스러운 관대를 풀려는 참이었다. 침소에서 쌔근덕거리는 약한 인기척이 있어 그곳으로 눈을 돌렸다. 순간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백옥같이 흰 계집이 얼굴만 이불 밖으로 드러내고 반듯하게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사신은 자신이 잘못 남의 방에 들어왔나를 의심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곳은 분명 자신의 방이었다. 아침나절에 놓아두었던 죽간과 필묵이 탁자 위에 그대로 있었고 자신의 옷가지도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사신은 잠에 취한 계집 가까이로 다가가 그녀를 뚫어지게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연회장에서 보았던 그 계집이었다. 진왕이 앞가슴에 술을 쏟았던 바로 그 계집.

사신은 허겁지겁 옷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살살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여전히 잠에 취한 채였다. 어린아이처럼 쌔근거렸다. 연회장에서 보았던 수줍음은 묻어있지 않았다.

사신은 계집 가까이로 얼굴을 가져가며 길게 호흡을 들이켰다. 맑고 상큼한 화분 냄새가 콧속으로 깊숙이 스며들었다. 만져보기에도 너무나 아까운 모습이었다.

참빗으로 정성껏 빗어 넘긴 머리에는 논둑길 같은 가르마가 곧게 따져 있었다. 넉넉한 이마와 약간은 넓은 듯한 미간이 아름다움을 더했다. 곧게 뻗어 내린 오뚝한 콧날과 탐스럽게 익은 입술, 달걀처럼 매끈하게 내려온 턱 선, 여유 있게 처진 귓불…….

그녀의 구석구석이 갈증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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