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라를 멸하다⑧

왕전은 조나라 국경에 다다르자 곧바로 기마병들을 앞세우고 진격의 고삐를 조였다. 수십만의 대군이 광야를 지나며 조나라 수도 한단으로 공격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온 계곡마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내려앉았고 광야는 핏빛으로 붉게 물들어 갔다.

하지만 내륙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조나라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명장 이목과 사마상이 왕전의 군사를 가로막고 밀고 당기기를 거듭했다. 전장에는 팽팽한 긴장감만 감돌 뿐이었다. 대치상황은 장기전으로 돌입하고 있었다.

그때 돈약의 이간책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조나라 권신 곽개는 조왕에게 나아가 간했다.

“대왕마마. 전선이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나이다.”

“그 무슨 말씀이오?”

“진나라 장수 왕전이 쳐들어 왔는데도 이목과 사마상이 움직이지 않고 있나이다. 그런데 근자에 그들이 머물고 있는 성에서 모반을 꾀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나이다. 이목과 사마상이 조나라의 모든 병사들을 거느리고 있으므로 그들이 모반을 꾀한다면 더없는 낭패가 아닐까 하옵니다.”

“뭐라. 장수들이 모반을 꾀하고 있다고?”

조왕 천은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한단성에 나돌고 있는 풍문을 점검한 결과 곽개의 주장처럼 그런 소문이 파다하게 번진상태였다.

이런 와중에 조왕 천의 어머니인 태후가 곽개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나섰다.

조나라 태후는 일찍이 한단의 기녀였는데 조왕 천의 아버지 도양왕이 한눈에 반해 그를 아내로 맞아 태후가 되었다. 그녀를 왕후로 맞을 때 극렬 반대했던 인물이 이목장군이었다. 그 때문에 이목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호시탐탐 그를 모략할 생각만 하고 있던 태후는 한단성의 소문을 빌미로 그를 음해하고 있었다. 태후는 매일같이 조왕에게 나아가 이목을 죽이라고 청했다.

조왕 천은 그런 태후의 청을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종실인 조총으로 하여금 이목의 병권을 대신하도록 명했다.

하지만 전장에서 이들을 맞은 이목은 병권을 넘겨주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병권을 넘겨받기 위해 군영으로 찾아온 조총을 크게 꾸짖었다.

“큰 적을 눈앞에 두고 장수를 바꾼다면 군심이 동요되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는 법. 장수의 재목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대가 어찌 군권을 넘겨 달라 하느냐.”

이런 사실이 조정에 전해지자 조왕은 더욱 분개하며 그가 모반을 꾀하려 함이 사실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조왕은 자객을 보내 명장 이목을 살해하고 말았다.

이런 소식이 군영에 전해지자 조나라 병사들이 크게 동요했고 군심은 흐트러져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이런 형국에 왕전이 협공을 펴고 있었으므로 조나라는 일시에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왕전은 밀물처럼 쉼 없이 조나라 군사들을 몰아세운 뒤 드디어 한단성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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