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가의 암살기도와 연의 멸망④

그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자신이 품고 있던 예리한 칼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누구라도 자객이 들이닥칠 것에 대비해 매일같이 갈아놓았던 칼이었다. 그러므로 칼날이 종이 짝처럼 날카로웠다. 촛불에 번쩍이며 눈을 파고들었다.

번어기는 잠시 사념에 잠긴 듯하다 이내 예리한 칼로 자신의 심장을 찔렀다. 단칼에 손잡이까지 깊이 박혔다. 그는 비명도 없이 그 자리에 조용히 널브러졌다.

이를 지켜본 형가는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다음 간단하게 제례를 올렸다. 곧이어 눈물을 머금고 그의 수급을 거두어 미리 준비한 함에 담았다. 아울러 미리 구해둔 독항지역의 지도를 들고 연나라 용사 진무양과 함께 진나라로 떠났다.

두 사람은 역수에서 전송을 하기 위해 나와 있던 태자 단과 빈객들에게 고배로 작별을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형가는 비장한 각오로 노래를 불렀다.

“바람은 쓸쓸하게 불고 역수는 찬데, 장수는 한번 갔다가 다시 돌아오질 않네.”

역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볼을 애였다.

노래를 마친 형가는 마차에 올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진으로 들어갔다.

그는 먼저 진왕의 총애를 받고 있던 몽가에게 많은 선물을 주고 자신의 서신을 함양궁에 전하도록 종용했다. 몽가는 뇌물에 눈이 멀어 편지를 진왕에게 전했다.

“연왕은 대왕의 위엄이 두려워 감히 맞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항지역의 지도와 번어기의 수급을 바치니 부디 이 몸을 진의 신하가 되게 하소서.”

서신을 접한 진왕은 크게 기뻐했다.

“반역자 번어기의 수급을 거두어 온자가 있다면 내가 직접 만나보리라.”

진왕은 조복을 입고 구빈의 예를 갖추어 함양궁에서 그를 맞았다.

형가는 번어기의 수급이 든 함을 가슴에 안고 진무양은 독항의 두루마리 지도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천천히 호위 병사들의 대열을 지나 진왕이 앉아 있는 대전으로 들어갔다.

첩첩이 에워 쌓인 병사들과 대신들은 함을 안고 들어오는 그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진왕 앞으로 나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함양궁 성문에서부터 검문이 유달랐으며 대전 앞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그럼에도 진왕의 특별한 지시가 있었으므로 무사히 그의 앞에 나갈 수 있었다.

진왕 앞에 이르자 진무양은 너무 두려워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몸을 연신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대신들이 그런 진무양의 모습을 보며 의아했다. 암살이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는 위기였다.

그것을 본 형가가 태연한 어투로 진왕을 향해 말했다.

“대왕마마. 진무양은 북방의 촌사람이라 여태껏 천자를 본적이 없어 겁을 먹은 것이옵니다. 대왕께옵서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제가 그를 안정시켜 사명을 다하겠나이다.”

그러자 진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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